엔리케 이글레시아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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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글 →‎음악 활동: 사전에 등재된 단어 몇을 빼고는 ‘여럿의 가운데’의 뜻이든 ‘무엇을 하는 동안’의 뜻이든 ‘중’은 명사이므로 그 앞을 띄어 쓴다. using AW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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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 활동 ==
이글레시아스의 첫 경력은 프렙 스쿨의 걸리버 고등학교 재학중에재학 중에 출연 한 뮤지컬 '헬로 돌리!"(Hello, Dolly!)이다. 부모에게 비밀로 노래 레슨을 시작하였고, 경영학을 배우기 위하여 [[마이애미 대학교 (플로리다 주)|마이애미 대학교]]에 1년 정도 다니다 음악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결심했다. 이글레시아스는 음악 레이블을 찾고 있었지만, 계약가가 나올 때까지 본명을 사용하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였고, 엔리케 마르티네스(Enrique Martinez)라는 가명을 썼다. 데뷔에 이르기 경력은 배경을 전혀 모르는 제3자가 이글레시아스의 데모 테이프를 듣고 재능을 인정했다는 설과 아버지의 전 매니저로 데뷔 당시부터 엔리케 이글레시아스의 매니저를 맡은 콜롬비아 사람의 페르난 마르티네스 (Fernán Martínez)에게 지원을 부탁했다는 설이있다.
 
이글레시아스와 매니저의 두 사람은 무명의 중남미 출신의 가수로 엔리케 마르티네스의 데모 테이프를 회사에 전달하였지만, 대기업 모두 거절 당했다. 드디어 멕시코 음악 등을 다루는 스페인계 라벨의 호노비사(Fonovisa)만 관심을 보였다. 호노비사와 계약을 맺은 이글레시아스는 캐나다의 토론토에서 첫 번째 음반의 녹음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