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폰 린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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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글 →‎신학에서 제기된 비판: 사전에 등재된 단어 몇을 빼고는 ‘여럿의 가운데’의 뜻이든 ‘무엇을 하는 동안’의 뜻이든 ‘중’은 명사이므로 그 앞을 띄어 쓴다. using AW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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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제자 크리스토퍼 탄스트롬은 아내와 자식들을 둔 43세의 사제로서 1746년에 그의 원정을 시작했다. 탄스트롬은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고, 같은 해에 열대 지방의 풍토병에 걸려 콘손 섬에서 사망하였다. 탄스트롬의 부인은 린네에게 자신의 남편을 사지로 몰아넣은 것에 대해 강하게 항의했는데, 이는 훗날 린네로 하여금 젊고, 미혼인 제자들을 식물학 원정에 보내기를 선호하게 했다. 훗날 [[피터 포스칼]]와 페르 로플링을 포함하여 6명의 제자가 추가로 원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탄스트롬이 원정을 다녀오고 2년이 지난 뒤, 핀란드 출신의 페르 캄이 두번째로두 번째로 북미에 원정을 가게 되었다. 그는 북미에서 2년 6개월을 지내면서 그곳의 식물과 동물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나갔다. 린네는 캄이 많은 꽃과 씨앗들을 가지고 돌아와 아주 기뻐했다. ''Species Plantarum''에 소개되어 있는 700여종 중 90종은 캄이 원정에서 가져온 것이다.
 
다니엘 솔란더와 요셉 뱅크스는 [[제임스 쿡]]과 함께 호주 원정을 떠났다. 다니엘 솔란더는 자신이 웁살라의 학생으로 있었을 때 린네의 집에서 살았었다. 린네는 그에게 자신의 장녀와의 결혼을 약속할 만큼 그에게 애정이 있었다. 또 린네의 추천으로 솔란더는 1760년에 영국으로 원정을 떠났는데, 그곳에서 그는 영국인 식물학자 요셉 뱅크스를 만났다. 이후 뱅크스와 솔란더는 제임스 쿡의 원정에 합류하여 1768-71년에 [[오세아니아]]에 다녀왔다. 솔란더 이외에도 제임스 쿡과 함께 원정을 다녀온 제자는 이후에도 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