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헌식: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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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자=2004-03-18
|확인일자=2008-04-16
}} </ref> 1935년 8월 14일 임기만료로 참의직에서 물러났으나 특별히 중추원 참의에 재임명되었다.
}} </ref>
 
장헌식은 관직에서 퇴임한 뒤로도 일본의 전쟁을 지원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만주 사변]] 이후 일본군을 후원한 활동을 인정받아 [[1937년]] 일본 육군대신 명의의 표창을 받은 바 있고,<ref name="실록친일파" /> [[중일 전쟁]] 발발 이후로는 시국강연반에 가담하여 전쟁 지원 연설을 하기도 했다. [[1938년]] 친일 단체인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에 발기인으로 참가한 뒤 [[1941년]] [[국민총력 조선연맹]]과 [[조선 임전 보국단]]에도 가담했다. 이때는 이미 70대의 노구였으나, 학병 지원을 독려한다며 전국에서 강연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처럼 일제 식민 통치에 많은 공을 세워 [[1926년]]부터 [[1945년]] 광복 시점까지 19년 동안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참의를 지냈으며, 광복 당시에는 [[이왕직]] 장관으로 관직에 복귀해 있었다.
 
=== 해방 이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