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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윤'''(池奫, ∼ [[1377년]])은 [[고려]] 말기의 무신, 군인이다. 본관은 충주(忠州)이다. 그의 아버지는 귀족이었으나 어머니는 무속인이었다. 가계는 한미하였으나 여러번 군공을 세워 출세하였다.
 
찬성사(贊成事)로 서북면 도원수(西北面 都元帥)가 되어 북원(北元)의 사신을 방비하고, 도체찰사(都體察使)로 [[고려]]의고려의 왕위를 찬탈하려는 심왕(瀋王) 모자의 음모를 토벌하였으며 정방제조(政房提調) 등을 역임했다.
 
친원파로 [[이인임]](李仁任) 등과 함께 정권을 잡았으나 후에 [[이인임]]과이인임과 [[최영]] 일파를 제거하려 하다가 역으로 처형당했다. 30명의 첩을 거느렸으며, [[조선 태조]] [[이성계]]의 장남 [[진안대군]]의 장인이자장인이며(삼한국대부인), 아들또한 차남 [[영안대군]] 이방과(→[[조선 정종|정종]])의 이방과의 장인이기도하다.(후궁 [[성빈 지씨의지씨]]·[[성빈 친정아버지이다.지씨|숙의 지씨]])
 
== 생애 ==
그의 부계는 귀족으로 할아버지 지흡(池翕)은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를 지냈고 아버지 지덕명(池德溟)은 원외랑(員外郞)이었으나 어머니는 무속인이었다. 처음 군졸에서 출발하였으나 점차 무공을 세워 공민왕이 그의 용맹함을 높이 사서, 여러 벼슬을 거쳐 공민왕 재위 후반에는 판숭경부사(判崇敬府事)가 되었다. 이후 서북면원수·경상도상원수 등 출정군(出征軍)의 지휘관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공민왕 말기에는 [[신돈]] 일파가 숙청되면서 [[신돈]]의신돈의 당여로 몰려 처형당한 [[강을성]](姜乙成)의 아내를 첩으로 취하고, [[강을성]]이강을성이 판도서에 바친 금의 비용인 포목 1천5백필을 모두 차지했다.<ref name="kki125">고려사 125권 열전 38 간신편</ref> 또한 재상 [[신순]](辛順)이 역시 [[신돈]]의 친족으로 처형당하자 아들 지익겸(池益謙)을 [[신순]]의신순의 딸과 결혼시켜 몰수당했던 [[신순]]의신순의 집과 재산을 찾아내어 자기 아들에게 주었다.
 
우왕 즉위 초에 [[북원]](北元)에서 사신이 오자 그는 [[이인임]](李仁任)과 함께 이를 맞이하고자 하거늘 [[정도전]](鄭道傳)과 그의 설득으로 [[김구용]](金九容), [[이숭인]](李崇仁), [[권근]](權近) 등이 나서서 지윤을 비난했다. 우왕 때에는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판판도사사(判版圖司事) 등을 역임하였다.
 
찬성사(贊成事)로 서북면 도원수가 되어 북원의 사신을 방비하였고, 도체찰사(都體察使)로 [[고려]]의 왕위를 찬탈하려는 심왕(瀋王) 모자의 반역을 간파하고 토벌하였으며 정방제조(政房提調)를 역임했다.
 
우왕 2년 찬성사로 있을 때 왕중귀의[[왕중귀]]의 미망인 기씨(奇氏)를 아내로 삼으려고 여러 번 중매자를 보냈으나 기씨는 응하지 않았다.<ref name="kki110">고려사 110권 열전 23</ref> 어느 날 지윤이 자기의 졸도들을 데리고 그 집으로 갔다. 기씨의 종이 급히 달려 가 이르기를 "부인은 몸을 피하기 바랍니다."라고 하니 기씨가 말하기를 ꡒ내 구차하게 피신하지 않겠다.ꡓ라고 하였으므로 종들은 아마 기씨가 응종하려는 것이라고 여겼다.<ref name="kki110"/> 기씨가 술상을 차려 지윤을 대접하니 지윤도 일이 잘 어울리나보다고 여겼다. 이리하여 마침내 지윤이 내실로 들어 가려 할 무렵에 기씨가 멱살을 들고 뺨을 후려 갈기며 꾸짖기를 "소위 재상이라는 자가 이 같은 강폭한 행동을 하느냐? 내 차라리 죽을지언정 네 말을 들을 줄 아는가?"라고 하였다. 지윤은 부끄러워 물러가버렸다. 기씨가 최벽에게 가서 말하기를 "내가 좋은 가옥에서 살고 있으므로 지윤이 그것을 차지할 욕심이 나서 나에게 폭행을 한 것이다. 당신은 청백 정직하기로 알려졌기 때문에 찾아 와서 말한다.<ref name="kki110"/>"라 하고 곧 이사하였다. 세상 사람들이 그를 갸륵하게 여겼다.<ref name="kki110"/>"
 
우왕 초 그는 당시의 권신(權臣)인 [[이인임]]의 심복이 되어 [[임견미]](林堅味)·[[염흥방]](廉興邦) 등과 어울려 한패가 되어 친원 정책을 비판하는 [[임박]](林樸), [[정도전]](鄭道傳), [[정몽주]], [[박상충]](朴尙衷) 등의 친명파, 신진사대부들을 탄압하였다. 관직과 옥(獄)을 팔아 많은 재산을 모았으며, 30명의 첩을 거느렸고 심복들을 대간에 배치, 그들을 사주하여 언론을 장악하고 부귀와 권세를 누렸다.
 
그러나 그의 아들 [[지익겸]]을 왜구토벌의 지휘관으로 파견하는 문제 등으로 점차 이인임과 사이가 나빠졌는데, 기회를 엿보던 [[이인임]]이이인임이 지윤의 심복부하인 [[김승득]](金承得)·[[이열]](李悅)·[[화지원]](華之元) 등을 정부 비방죄로 몰아 유배시키자, 이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지신사(知申事) 김윤승(金允升)과 공모하여 군사를 일으켜 거병, [[이인임]]·[[최영]] 등을 제거하려고 하였으나 결국 실패하고 체포, 아들 [[지익겸]] 등 가족·당여(黨與)와 함께 처형되었다.
 
=== 사후 ===
묘는 풍덕(豊德)에 안장되었다. 그의 살아남은 딸은 [[이성계]]의 두 아들인 [[진안대군]] 이방우와 [[영안대군]] 이방과(→[[조선 정종|정종]] 이방과에게)에게 출가하였다. [[조선]] 건국 뒤 그의 집안은 외척이 되었으나 그는 [[고려사]] 편찬 때 간신 열전에 실리게 되었다. 지윤은 크게 세도를 부리면서 거의 30명이나 되는 많은 첩을 거느렸는데 오직 부자만 취하였고 색은 문제삼지 않았다<ref name="kki125"/>고 한다.
 
화를 면하고 그의 살아남은 일부 자손들은 향리 신분으로 전락하였다. 후일 17세기 경 [[조선]]후기의 시인, [[윤휴]]가 고향인 풍악을 방문하다가 아전으로 전락한 그의 후손 지응룡(池應龍)을 만났던 것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했다.<ref>백호전서 제34권 잡저(雜著) 풍악록(楓岳錄) 편</ref>
 
== 평가 ==
[[고려사]] 간신편에 의하면 지윤은 크게 세도를 부리면서 거의 30명이나 되는 많은 첩을 거느렸는데 오직 부자만 취하였고 색은 문제삼지 않았다<ref name="kki125"/>고 한다.
 
== 가계 ==
* 할아버지조부 : [[지흡]](池翕)
[[고려사]] 등에 의하면 그는 30명의 첩을 거느렸다 한다.<ref name="kki125"/> [[조선]]의 개국공신 [[지용도]]와 [[지용수]]는 그의 5촌 당조카였다.
* 할머니조모 : 조씨(趙氏)
 
* 할아버지 : [[지흡]](池翕)
* 할머니 : 조씨(趙氏)
** 백부 : [[지덕로]](池德老)
** 백모 : [[광산 김씨]]
*** 사촌 : [[지연]](池演)
** 숙부 : 문성공 [[지원부]](指元夫), [[경주지씨]]의 시조(?)
*** 사촌 : [[지환]](池桓), [[지용도]](池龍圖), [[지용수]](池龍壽)의 아버지
**** 아버지종질 : 충의공 [[지덕명지용도]](池德溟龍圖), 고려의 무신
**** 종질 : 충무공 [[지용수]](池龍壽), 고려의 무신
* 어머니: 이름 미상, 무속인
* 부친 : [[지덕명]](池德溟)
* 정실 부인 : [[순흥안씨]]
* 어머니모친 : 이름 미상, 무속인
* 정실 부인 (계비) : 원씨
* 본인 : '''지윤(池奫)'''
** 아들 : [[지익겸]](池益謙, ? - [[1377년]])
* 정부인 : 안씨
** 며느리 : [[영산 신씨]], [[신순]]의 딸, [[신돈]]의 친족
* 계부인 : 원씨
** 아들 : [[지득린]](池得鱗)
** 아들장자 : [[지익겸]](池益謙, ? - [[1377년]])
** 장녀 : 삼한국대부인 지씨, [[진안대군]]의 부인
** 자부 : [[영산 신씨]], 재상 신순의 딸
*** 외손녀 : 이씨, [[이숙무]]에게 출가, 음애(陰崖) [[이자]](李潸)의 증조할머니
** 아들차자 : [[지득린]](池得鱗)
** 차녀 : [[성빈 지씨]], [[조선 정종]]의 후궁
** 장녀 : [[삼한국대부인 지씨]](三韓國大夫人 池氏), [[조선 태조]]의 장남 [[진안대군]]의 부인
* 첩 : 강을성의 처 등 약 30명
** 차녀 : [[성빈 지씨]](誠嬪 池氏), [[조선 태조]]의 차남 [[영안대군]](→[[조선 정종|정종]])의 후궁
** 삼녀 : [[숙의 지씨]](淑儀 池氏), [[조선 태조]]의 차남 [[영안대군]](→[[조선 정종|정종]])의 후궁
* 첩부인 : 강을성의 처 등 약 30명
 
== 주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