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즈 마운트배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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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 세계 대전 ===
 
다른 많은 왕족들처럼 루이즈도 1차대전때 친척들끼리 싸우는것을싸우는 것을 경험했다. 특히 영국에서 반 독일 감정이 형성되면서 조지5세는 독일계 친척들에게 작위와 타이틀을 버리라고 강요했다. 루이즈는 그녀의 부모와 함께 [[독일 제국|독일]]에서의 모든 [[작위]]를 포기하고, 바텐베르크를 [[영어]]로 직역한 [[마운트배튼]]을 성으로 사용하게 되었고, 후에 [[레이디]]라는 경칭을 얻는다.
 
루이즈는 1차 대전때 자원해서 간호사로 프랑스에서 부상병들을 돌보는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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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갑작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3년 전 상처했던 스웨덴의 구스타프 아돌프 왕태자가 루이즈에게 청혼을 한것이었다. 루이즈는 무척이나 당황했으며, 왕태자비라는 엄청난 지위와 다섯명이나 되는 전처의 자식들과 외국에서 살아야한다는 두려움으로 고민했다. 하지만 구스타프 아돌프의 청혼은 다른 가족들에게 무척이나 기쁜 일이었으며 루이즈의 어머니 빅토리아는 루이즈에게는 강하게 밀고 나가야한다고 구스타프 아돌프에게 충고까지했다. 결국 루이즈는 그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루이즈의 결혼은 그리 편하게 진행된것은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점이 두가지가 있었는데 구스타프 아돌프가 아이들에게 새어머니가 생길것이라는 사실을 바로 말하지 못한것이었다. 특히 고명딸인 잉리드는 친어머니가 죽은지 겨우 3년밖에 안되었는데 새어머니가 생긴다는것을생긴다는 것을 이해못했다. 또 다른 문제점은 루이즈의 신분 문제였다. 루이즈는 독일 왕족 신분을 버렸고 겨우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일 뿐이었다. 그녀의 신분이 영국 귀족일뿐이라면 루이즈와 구스타프 아돌프는 결혼할수결혼할 수 없었다. 당시 스웨덴은 엄격한 귀천상혼제를 적용했기에 왕족출신이 아닌 여성과 결혼할 경우 왕위계승권을 박탈당했다. 이때문에 루이즈와 구스타프 아돌프의 결혼은 미묘한 문제였다.
 
아이들 문제는 가족들이 결혼전 만나는것으로만나는 것으로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뚜렷했던 위의 아이들은 루이즈와 잘 어울리지 못했으며 특히나 잉리드는 매우 화를 냈다. 반면 어렸던 아이들은 좀 더 루이즈를 따랐는데, 특히 벨틸과 루이즈는 사이가 매우 좋아진다. 루이즈의 신분 문제는 결국 외교적 해결법을 찾게 된다. 영국의 [[조지 5세]]는 루이즈가 영국 왕실의 일원임을 보증했고 이에 구스타프 아돌프의 아버지인 구스타프 5세와 외교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문에는 루이즈가 영국 왕실의 일원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루이즈부터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에 이르는 모계가계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루이즈와 구스타프 아돌프는 1923년 11월 3일 성 제임스 궁전의 로열 채플에서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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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즈가 결혼했던 때, 스웨덴 궁정에서는 중심이 되는 여성이 없었다. 루이즈의 시어머니였던 [[바덴의 빅토리아]]는 건강이 좋지 못해서 자주 외국에 나가있었으며, 구스타프 아돌프는 부인인 [[코넛 공녀 마거릿]]을 잃고 난 뒤었고, 구스타프 아돌프의 동생 빌헬름 왕자는 부인인 러시아의 마리야 표도로브나 여대공과 이혼한 상태였다. 결국 루이즈는 결혼과 동시에 왕실에서 가장 높은 지위의 여성으로 궁정을 이끌어야 했다. 다행히 루이즈는 다른 바텐베르크 가문 사람들처럼 언어에 소질이 있었고, 스웨덴어를 빨리 익힐수 있었고 여러가지 사업에 나아가 연설을 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1950년 루이즈의 시아버지인 구스타프 5세가 사망하자, 루이즈는 스웨덴의 왕비가 되었다. 하지만 소심했던 루이즈는 자신이 "폐하" (Your Mejesty)라고 불리는것에불리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더 재미난 이야기가 [[조지 6세]]의 장례식때 있었다. 장례식에 참석한 루이즈앞으로 "스웨덴 왕비용 의전 차량"이 도착했다. 문제는 루이즈가 그 차량이 자신을 위한 차량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루이즈는 스웨덴에서 인기 있는 왕비가 되었다. 남편 구스타프 6세 아돌프와 마찬가지로 소탈한 성격이었으며 노부부는 자주 경호원 없이 단 둘이서 궁전 밖을 산책하고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