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도비코 라자로 자멘호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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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멘호프의 부모는 유대인이었고, 원래 [[리투아니아]] 출신 가문이었다. 아버지 마르쿠스는 [[프랑스어]]와 [[독일어]] 강사로 일했다. 어머니 로잘린은 어린 자멘호프에게 주로 [[이디시어]]를 썼고, 아버지 미르쿠스는 자멘호프에게 주로 [[러시아어]]를 썼다. 이 밖에도 가정에서 [[폴란드어]]가 쓰였고, 또 마르쿠스는 자멘호프에게 [[프랑스어]], [[독일어]], [[히브리어]]를 가르쳤다.
 
자멘호프는 학교에서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 [[영어]]를 배웠다. 이 밖에도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리투아니아어]]에도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자멘호프는 이미 학교에 있을 때인 1878년부터 "[[초기 에스페란토|린그베우니베르살라린그베 우니베르살라]]"({{lang|eo|Lingwe uniwersala}})라는 이름으로 [[국제어]]에 대하여 생각하기 시작했고, 1878년 생일(율리우스력) 때 이미 이 "린그베우니베르살라린그베 우니베르살라"로 지은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모스크바]]에서 [[의학]]을 1879~1881년 동안 배웠고, 그 뒤 [[바르샤바]]로 옯겨 의학 공부를 1881~1885년 동안 계속했다. 의과대학 졸업 후 내과적 질환을 주로 보는 일반의로 일했으나, 자신이 진료한 환자들의 죽음에 괴로워하며 자신이 이 일에 맞지 않는다고 느껴 바르샤바에서 안과 수련을 받았다.
 
처음에는 위대한 러시아 문인이 되는 것이 꿈일 정도로 러시아 제국에 호의적이었으나, 1881~1882년의 [[포그롬]]으로 인하여 점점 [[시온주의]]적 성향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1885년에 접어들면서 유대인에 대하여 배타적인 시온주의를 벗어나 범세계적인 [[인본주의]]를 꿈꾸게 되었다. 이는 훗날 그가 제창하게 될 [[인류인주의]]({{lang|eo|Homaranismo}})의 바탕이 되었다.<ref>Naftali Zvi Maimon: La kashita vivo de Zamenhof. Originalaj studoj, Tokio 1978, S. 106/107</ref>
 
=== 전문직 및 에스페란토의 창시 (1885~19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