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우드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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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 출생과 첫 결혼 ===
[[1437년]] [[노샘프턴셔]]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리처드 우드빌, 어머니는 룩셈부르크의 자퀘타이다. 아버지 리처드 우드빌은 [[랭커스터 왕가]]의 [[헨리 4세]]의 아들 [[베드퍼드 공작 존]]의 시종 무관의 아들이자 기사로 평민 신분이었다. 반면 어머니 룩셈부르크의 자퀘타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4세]] 등을 배출한 룩셈부르크 가문의 분가 출신으로, 통치 가문인 생 폴 백작가의 딸이었다. [[1433년]] 17세 때 베드퍼드 공작과 결혼한 룩셈부르크의 자퀘타는 2년 뒤인 [[1435년]] 공작이 [[루앙]]에서 자녀 없이 사망하자 리처드 우드빌과 사랑에 빠져 국왕의 승인 없이 비밀리에 결혼하였다. 혼인 초기 국왕으로부터 베드퍼드 공작의 미망인으로서 받아야 할 유산을 지급받는 것을 거부당하는 등 왕실과 갈등을 빚던 룩셈부르크의 자퀘타는 여동생 이사벨의 시가 쪽 조카인 [[앙주의 마거릿]]이 [[랭커스터 왕가]]의 국왕 [[헨리 6세]]의 왕비가 되면서 궁정에서 신임을 얻었고, [[1448년]] 리처드 우드빌에게 리버스 남작 작위가 내려지면서 남작 부인이 되었다. 이 같은 인연으로 우드빌 가문은 [[1455년]] [[장미 전쟁]]이 발발한 이후 지속적으로 [[랭커스터 왕가]]를 지지하였으며, 두 부부의 장녀였던 엘리자베스 우드빌 역시 [[1452년]] [[랭커스터 왕가]]의 기사이자 페러스 남작의여남작의 후계자였던 그로비의 존 그레이 경과 혼인하였다. 이 결혼에서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후일 도싯 후작이 되는 토마스 그레이와 리처드 그레이 두 아들을 얻었다.
 
=== 왕비 시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