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저민 링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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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0년]] [[5월 12일]]에는 영국군의 [[헨리 클린턴]] 장군에게 항복하게 되었다. 이것은 독립 전쟁에서 대륙군 최대의 패배였다. 링컨은 항복 있어서, 전사의 명예를 부정당하게 되고 마음 속으로 화가 치밀었다. 링컨은 포로 교환 식으로 석방되었지만, 해제됐지만, 조사위원회에서는 어떤 허물도 문제되지 않았다. 링컨은 곧바로 워싱턴의 주력 부대로 복귀하여, 남부 버지니아로 가서 [[1781년]] [[10월 19일]]의 요크타운에서 영국군의 항복까지 큰 역할을 했다. 이 항복은 콘월리스 경이 패배의 굴욕을 느끼고 워싱턴 장군에 직접 군도를 전달하는 항복 의식을 거부했다. 결국 부관인 찰스 오하라가 콘월리스 대신 서게 되었으며, 워싱턴의 부관이었던 링컨이 콘월리스의 군도를 받았다.
 
== 그후 ==
벤저민 링컨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1787년]] 의회의 일원으로서 미국 헌법의 비준에 입회한 것이었다. 그 이후 2월에는 셰이드의 반란으로 알려진 농민 반란을 진압했다. 링컨은 1809년 은퇴까지 다양한 입장에서 공적인 활동을 계속하였고, [[1810년]] [[5월 9일]] 그가 태어난 힝엄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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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렬:링컨, 벤저민}}
{{Authority control}}
 
[[분류:미국 독립 전쟁 관련자]]
[[분류:1733년 태어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