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혜공: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010203aaa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010203aaa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2번째 줄:
 
== 생애 ==
《사기》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실려 있다. 혜공은 적부인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했고, 천첩 성자(聲子)에게서 아들 [[노 은공|식고]]를 낳았다. 식고의 아내로 [[송 (춘추전국)|송나라]] 공녀([[송 무공|무공]]의 딸인 중자(仲子, 성이 자이고 무공의 두번째 딸로 태어났으므로 중자라 함)를 맞아들였는데, 그 여자가 아름다워 빼앗아 아내로 삼아 아들 [[노 환공|윤]]을 낳았고, 그 송나라 공녀로 부인을 삼았다. 또 윤으로 태자를 삼았으나, 혜공이 죽었을 때 윤의 나이가 어려 노나라 사람들이 식고를 옹립하여 섭정하게 했다.
 
그러나 사마정은 《사기색은》에서 혜공이 며느리를 빼앗았다면 춘추에 무도한 임금이라 기록되었을 텐데 그런 말이 없으므로 의문을 표했고, [[초주]]도 이를 부정했다.<ref name="sg">사마천, 《사기》 권33 노주공세가제3</ref>
 
말년에 송나라와 싸워, 송나라의 황(黃) 땅에서 송나라 군대를 무찔렀다.<ref name="cze1">《춘추좌씨전》 은공 원년</ref>
 
== 가정 ==
* [[노 효공]]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