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 인디아 182편 폭파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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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6월 4일 [[캐나다 안보정보청]] 직원에 따르면 레리 로웨와 린 머캐덤이 파마르와 한 "젊은 남성"(확인된 바에 의하면 "Mr. X", "제3의 남성" 혹은 "알려지지 않는 남성성"이었다)을 미행했을 정도로 그들은 파마르의 집에서 호스슈 만에 위치한 페리터미널로 가서 나나이모 바운드 페리를 타고 르얏의 집을 방문하거나 오토 마린 전기의 상점을 드나들었다. 방치된 부시 구역으로 세차례의 운전은 숲으로 들어가기 위한 목적으로 어딘가에서 르얏이 관찰되었다는 뜻이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머무른 첩보원은 카메라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나 "요란한 총소리"처럼 들린 폭발음만은 들을수 있었다. 이후의 테스트에서도 그것은 또한 폭발했음이 보여졌으며 후의 수색에서도 "전기 발파 캡"으로 나머지 알루미늄이 발견되었다. 캐나다 왕립 기마 경찰대(CSIS) 대테러 국장 J.S 워렌은 이후 1986년 7월 16일에 폭탄 테러를 저지할수 있었음에도 왜 그들이 용의자에 대한 심문과 경찰에게 말하는 것 또는 자동차에 대한 수색을 중단했는가에 대해 입을 열었다.
 
다음날 르얏은 울워스(슈퍼마켓 체인)에서 커다란 산요 사 컴포넌트 라디오인 FMT 611K를 구매하였으며 구입 명세서 왼쪽 그의 이름 및 전화번호가 후에 그의 집을 수색하여 발견하였다. 르얏은 또한 한 스포츠 용품점에서 무연 화약을 샀으며 폭발 로그에 "나는 르얏"이라 서명하였다. 나리타 공항 사건에서의 파편 연구에 따르면 결국 폭발물이 탑재된 산요 라디오는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에서만 판매 하는 모델의 시리얼 번호와 일치하였으며 폭발 시한 장치에 사용된 마이크론타 시계는 에브레디 12V 배터리와 함께 발파캡 방아쇠를 구동하는 식으로 다이너마이트 스틱과 같은 고성능 폭발이 설정되면서 르얏이 구입한 모든 항목이 일치하였다. 이것은 재판에서 그의 최종 유죄로 이어졌다. 2010년 뒤늦게 르얏은 몇가지 부품을 구매하고 조립한 것만은 인정하고 폭탄을 제조한 것은 부인했으나 폭탄이 무엇을 위해 쓰일 것인지는 알고 있었으며, 사건의 뒤에는 누가 있으며 그가 만들었던 장치의 실패 이후 그의 집에서 1주일 동안 폭발 장치 만드는 것을 완료했던 남자의 이름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1985년 6월 9일 해밀턴에서 경찰에 밀고한 보고서에는 파마르와 바그리가 몰튼에 있는 시크교 사원을 방문하여 "그것은 더이상 안전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독설적 경고를 날렸으며 이는 에어 인디아 비행편을 노렸다는 내용이었다.
 
=== 항공권의 확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