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 제2제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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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아센 2세의 치세 초반 헝가리와의 결혼 동맹을 통해 베오그라드와 브라니체보를 평화적으로 되찾았다. [[1223년]] [[에페이로스 공국]]이 [[테살로니키]]를 점령하면서 발칸 반도 정세의 중심으로 부상하자, 불가리아는 에페이로스와 협정을 맺었다. 한편 에페이로스와 대립하던 라틴 제국의 제후들은 이반 아센 2세에게 어린 황제 [[보두앵 2세]]의 후견을 요청하였고 이반 아센 2세는 이를 승낙하여 라틴 제국과 동맹 관계가 성립되었다. 에페이로스의 데스포트 데오도로스 콤네노스 두카스는 맹약을 파기하고 불가리아를 침공하였지만, [[1230년]] 3월 9일 [[클로코트니챠 전투]]에서 이반 아센 2세는 대승을 거두었고, 테오도로스를 포로로 사로잡았으며, 에페이로스 공국을 불가리아의 봉신으로 전락시켰다. 클로코트니챠 전투를 통해 불가리아의 강역은 트라키아의 대부분, 로도피 지역, 마케도니아 전역, 알바니아에 이르렀으며, 제 1차 불가리아 제국의 최대 판도와 맞먹는 영역을 지배하는 발칸 반도 제일의 대국으로 떠올랐다.<ref name="주석5">ディミトロフ、イスーソフ、ショポフ『ブルガリア 1』、94頁</ref>
 
로마 교회는 불가리아의 견제를 위해 헝가리에게 불가리아 북서부를 공격할 것을 촉구하였으며<ref name="주석5" />, 헝가리는 일시적으로 베오그라드와 브라니체보를 획득하였으나 이반 아센 2세의 동생인 알렉산더르에게 격퇴당했다. 이로써 칼로얀 때 성립되었던 로마 교회와의 합작도 파기되어, [[1235년]] [[니카이아 제국]]과 반 라틴 제국 동맹을 맺음과 동시에 로마 카톨릭으로부터가톨릭으로부터 독립하여 독립된 수좌주교구(Patriarch) 설치를 인정받았고 이로써 제 1차 불가리아 제국 멸망 이후 사라졌던 [[불가리아 정교회]]가 부활하였다.
 
이반 아센 2세는 현명하고 자애로운 군주로 명성을 얻었으며, 서방 세계, 특히 [[베네치아]]와 [[제노바]]와 제국의 무역 확대를 위해 교류하였다. 불가리아 제국은 경제적 번영을 누렸으며, 무역 관계가 확대되고 1235년에는 정비된 해군을 보유하였다. 하지만 그의 치세 말년에 [[몽골 제국]]이 동유럽을 침공해 러시아를 정복하고 폴란드와 헝가리를 혼란에 빠트렸고, 불가리아에도 침공해왔다. 하지만 [[1241년]] 이반 아센 2세가 죽은 뒤에야 불가리아 지배자들은 몽골의 위험성을 인식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