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료체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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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런 방식은 미국 남북전쟁에도 도입되었고 또한 민간의 응급의료에도 영향을 주었다<ref>Manish N. Shah, The Formation of the Emergency Medical Services System, Am J Public Health. 2006 March; 96(3): 414–423. http://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1470509/</ref>. 미국의 응급의료체계가 본격적으로 발전한 것은 60년대부터이다. 당시 미국에서는 응급환자의[[응급환자]]의 이송이 주로 장의 차량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사람이 누울 수 있을만한 이송 수단이 장의차 이외에는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ref name="tintin"/>. 그러나 교통사고 환자가 [[월남전]] 부상자보다 치료결과가 나쁘다는 보고서와 함께 열악한 응급의료 현실을 지적한 백서<ref>White Paper: Accidental Death and Disability, the Neglected Disease of Modern Society. http://www.nap.edu/openbook.php?record_id=9978</ref>가 출간되면서 본격적인 응급의료체계를 수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
한국의 60~70년대 신문기사를 찾아보면, 응급환자들이[[응급환자]]들이 현장에서 제대로 된 응급조치를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위중한 상태로 각급 병원을 전전하고도 제대로 된 응급의료를 제공받지 못하고 결국 사망하는 사건이 끊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1979년에 이르러 대한의학협회에서 "야간응급환자 이송센터"를 운영하였는데 각급 병원 병실이나 의료진의 현황을 파악하여 전화로 신고를 받으면 구급차를 출동시켜 치료 가능한 병원으로 이송해 주는 시스템으로 진일보한 면이 있었다<ref> 의협 야간 구급 환자 신고 센터 지나친 의존 눈코 뜰새 없어, 경향신문, 1979년 9월 11일, 2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ref>. 1982년에는 119 구급대가 창설되면서 공공 서비스로서의 구급 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ref>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119 긴급 구조, 국가기록원. http://theme.archives.go.kr/next/koreaOfRecord/disasters.do?menuId=0902050000</ref>.
 
1991년에 응급의료시행규칙이 제정되면서 응급환자정보센터, 응급의료센터, 응급의료지정병원 등을 도입해 기본적인 응급의료체계의 도입이 이루어졌다. 1994년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본격적인 응급의료체계의 기틀이 마련되어 1995년 [[응급구조사]]가 공식적으로 배출되기 시작하였고, 1996년 첫번째 [[응급의학과]] [[전문의]] 시험이 치러졌으며, 2000년 현재와 같은 [[응급의료기관]] 체계가 수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