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침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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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침몰'''(日本沈没, にほんちんぼつ、にっぽんちんぼつ)은 [[1973년]]에1973년에 [[고마쓰 사쿄]]가 집필한 일본의 [[과학 소설|SF 소설]]이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 라디오 드라마, 만화도 같은 제목으로 만들어졌다. 영화는 1973년과 [[2006년]]에2006년에, 라디오 드라마는 1973년과 [[1980년]]에1980년에 제작되었다.
 
== 소설 ==
[[1964년]]부터1964년부터 집필이 개시되어 9년이 걸려 완성되었다. 당초 여러 권으로 출간될 예정이었던 장편을 출판사의 요청으로 줄여서 상하권으로 했다.
 
[[1973년]]에1973년에 [[고분샤]] 카파 신서판 소설 신작으로 상하 2권이 동시 간행되었다. 당초에는 삼만 부씩 발행하려 했지만, 판 수를 거듭할 때마다 출판 수가 증가해 상권 204만 부, 하권 181만 부로 합계 385만 부까지 발행해서 '공전의 대 베스트셀러'라고도 평가되었다. 고마쓰는 1억 2000만 엔의 수입을 얻고, 문단 부자 순위 5위에 등극하였다. [[1974년]]에는1974년에는 제 27회 일본 추리 작가 협회상을 수상하였고, 제 5회 [[세이운상]] 일본 장편 부문을 수상하였다.
 
베스트셀러가 되어 고마쓰의 지명도는 상승했고, 일본 내에서는 SF 소설의 인지도가 높아졌다. 베스트셀러가 된 배경에는 고도의 경제 성장과 관련이 있고, [[1970년]]의1970년의 [[1970년 세계 박람회|오사카 만박]]으로 대표되는 장미빛 미래 붐의 안티테제로서 등장한 것의 충격에 더해, [[1973년]]의1973년의 광란의 물가라고도 불린 인플레이션, [[유류 파동|오일 쇼크]] 등의 사회 불안이 있었다. 그러한 풍조에서 [[노스트라다무스]] 붐, 종말 붐, 초능력 붐의 단서로서 불리는 일도 많다.
 
[[1976년]]에는1976년에는 마이클 갤러퍼([[:en:Michael Gallagher (translator)|Michael Gallagher]])의 번역으로 미국에서 'JAPAN SINKS'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일본 침몰은 일본인이지만 모국을 잃어 방랑의 민족이 되면 어떻게 될까를 주제로 하며, 사실 지구과학 내용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약간 뒷전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에 표현된 것이 당시 겨우 인지되기 시작하고 있었던 [[판 구조론]]이여서, 이 작품은 그 분야를 넓게 소개하는 역할도 했다. 작품에 대한 리뷰는 이 분야에 관한 한 석사 논문에 해당한다는 소리도 있었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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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는 집필 당시의 시대 상황에 따랐지만, 어디까지나 가까운 미래의 사건이라는 설정을 위해서 집필 당시에는 아직 완성하지 않았던 시설 중 몇 개인가가 이미 가동하고 있는 것으로 하여 이야기가 진행된다([[나리타 국제공항|신도쿄 국제공항]]·[[세이칸 터널]]·[[간사이 국제공항]] 등). 또, [[JR자기부상철도|부상식 리니어]]를 이용하는 제 2도카이도 [[신칸센]]과 같이 현재에도 구상 단계(혹은 중단된)인 것들이 착공되었다는 예도 있었다.
 
또한 일본이 침몰한 것은 일본의 인구가 감소한 다음 해라는 설정도 있었으며, 기이하게도 현실에서는 리메이크 영화판이 공개되었던 [[2006년]]에2006년에 해당했다(다만, 소설판에서는 전년에 도쿄 대지진이 일어났기 때문에 재해의 영향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음).
 
== 1973년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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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튜디오 =
| 배급 = [[도호]]
| 개봉 = {{국기나라|일본}}[[ 1973년]] [[12월 29일]]<br />{{국기나라|독일}}[[ 1974년]] [[11월 9일]]<br />{{국기나라|미국}}[[ 1975년]] 5월<br />{{국기나라|스웨덴}} 1975년 [[10월 6일]]<br />{{국기나라|핀란드}}[[ 1976년]] [[4월 30일]]
| 출시 =
| 시간 = 1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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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사이트 =
}}
[[도호]]의 제작과 배급으로 [[1973년]] [[12월 29일]]에29일에 개봉되었다. 도호의 [[다나카 도모유키]] 프로듀서가 소설의 간행과 동시에 본작을 읽고 영화화권을 취득했다.
 
감독은 [[구로자와 아키라]] 작품에서 조감독을 맡은 경험이 있는 [[모리타니 시로]]를 발탁했다. 각본은 구로자와의 작품에 같이 참가한 [[하시모토 시노부]]가 맡았다. 제작 기간은 약 4개월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약 88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으며, 배급 수입은 약 16억 4000만 엔([[1974년]] 영화 부문 흥행 수입 1위)에 이르는 대히트를 기록했다. [[나카노 데루요시]]가 감독한 특수 촬영도 아시아 영화제의 특수효과상을 수상하는 등 높은 평가를 받았다. 본작의 성공으로 모리타니 시로는 이후 '핫코타 산' 등 대작 영화를 맡을 정도의 감독의 지위를 확립하고, 도호도 [[1975년]]까지1975년까지 본작에서 계속되는 형태로 '노스트라다무스 대예언', '도쿄만 염상'과 같은 패닉 대작을 하나의 노선으로서 부설하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로저 코만]]에 의해 공개되었다. 할리우드 배우를 사용한 추가 촬영을 해 원작보다 꽤 짧아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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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영화 ==
{{참고|일본 침몰 (2006년 영화)|설명=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도쿄 방송|TBS]] 등이 제작비 20억 엔을 투자하고, [[도호]]의 배급으로 [[2006년]] [[7월 15일]] 공개되었다. 감독은 [[1973년]]판의1973년판의 영화를 '자신이 영화 제작을 뜻하는 계기가 된 작품'이라고 말하는 [[히구치 신지]]가 맡았다. 2006년 공개 영화에서는 일본 내 흥행 순위 제 4위인 수익금 53억 4000만 엔의 히트작이 되었다. 본작의 포스터는 [[일러스트레이터]] 오라이 노리요시가 그린 홋카이도, 도쿄, 교토, 규슈 지방의 '당지 침몰' 포스터가 4종류 작성되었다. 그것과는 별도로 [[주쿄권]]의 도호 선전부가 독자적으로 '나고야 침몰'의 포스터를 작성했기 때문에 예정에 없었던 나고야 붕괴 장면이 급히 추가된 포스터가 있다. 이를 패러디한 영화 역시 같은 해인 2006년에 나왔으며 '('''일본이외 전부 침몰 - Everything but Japan Sinks''')'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같은 해에 나온 패러디 영화는 98분이다.
 
== 텔레비전 드라마 ==
1974년 10월 6일부터 1975년 3월 30일까지 일요일 20:00에 [[도쿄 방송|TBS]] 계열에서 총 26회가 방송되었다. 1975년 12월 31일에는 총집편이 방송되었다. 영화([[1973년]]판1973년판)에서 유용한 컷에만 의지하지 않고 여기저기에서 의욕적인 화면을 완성한 특수 촬영뿐만 아니라, 드라마 부분에도 고액의 예산이 소비되어 '캐스팅 비용만으로 1억 엔'이라고 한다<ref>DVD 수록의 해설(정지화면)</ref>. 아래와 같은 주요 캐스트 이외에도 [[하마 미에]], [[쓰치야 요시오]], [[후지키 유]] 등 [[도호]] 특수 촬영 작품으로 친숙한 배우부터 시작해 호화로운 멤버들이 게스트로 출연해, 각 회의 이야기를 장식했다. 또한 주제가를 노래한 [[이쓰키 히로시]]도 제 14화에 게스트 출연하였다. 덧붙여, 소설에서는 중반에 대지진의 발생에 의해서 대재해를 입은 도쿄가 마지막까지 피해가 없기도 하고, 유키나가 조교수가 이야기의 도중에 나오지 않게 되어(연기하는 호소카와 도시유키가 도중에 하차했기 때문에) 대신에 다도코로 박사에게 협력하거나 다도코로 박사에게 딸이 있다는 드라마 독자적인 설정·전개가 있다. 또, 다도코로 박사는 원작과 달리 살아 남는다. 마지막 장면도 소설이나 영화와 큰 폭으로 달라 오노데라와 레이코가 생사 불명이라는 형태로 막을 닫지만, 후에 방송된 총집편의 나레이션 등에 의하면 2명은 살아나 호주로 탈출했던 것이 밝혀졌다. 본방송 당시 [[간사이 지방]]에서의 넷국은 [[아사히 방송|ABC]]였지만, 후의 [[도쿄 방송|TBS]] 계열에서 [[테레비 아사히]] 계열로의 넷 체인지의 준비도 겹치고 있었다. 기이하게도 최종회가 방송된 [[3월 30일]]은30일은 ABC에서의 TBS 계열로서 마지막 방송일이기도 했다. 후에 간사이에서의 재방송은 [[1987년]] 가을부터 현재의 계열국인 [[마이니치 방송|MBS]] 화요일 심야 시간대에서 이루어졌다. [[1995년]]에1995년에 [[후쿠오카 현]]에서 심야 프로그램(새벽 프로그램)으로서 재방송 되고 있었지만, 동년 [[1월 17일]]에17일에 제 2화의 방송이 끝난 직후 [[효고 현]] 남부 지진([[한신·아와지 대지진]])이 일어났기 때문에 3화째부터 방송이 중지되었다. [[1996년]]부터1996년부터 [[1997년]]에1997년에 걸쳐 전 13권을 2개로 나눈 LD-BOX가 발매되었다. [[2001년]]에는2001년에는 전 9권으로 DVD가 발매되었으며, [[2006년]]에는2006년에는 비한정의 DVD-BOX가 발매되었다(어뮤즈 소프트 엔터테인먼트).
 
=== 스태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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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3년 라디오 드라마 ==
[[마이니치 방송]]이 제작하였으며, 영화판, 텔레비전판보다 이른 [[1973년]] [[10월 8일]]부터8일부터 [[1974년]] [[4월 5일]]의5일의 반년 간 9:00 - 15분의 연속 프로그램으로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NRN]] 계열 방송국에서 방송되었다. 총 130회. 주인공 오노데라의 이름은 도시오가 아니라 고스케로 되어 있다.
 
=== 제작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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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 라디오 드라마 ==
[[일본방송협회|NHK]] 연속 라디오 드라마.([[1980년]], '연속 스테레오 소설'로서 [[NHK-FM방송|NHK-FM]]에서 방송, 후에 AM에서 재방송) 1화당 15분으로 총 10회 방송됐다. 설정 연대를 '198X년'이라고 한 것 외는 거의 소설 그대로의 스토리 전개이다. FM에서 첫 회 방송이 시작되기 전에 [[NHK 종합 텔레비전|종합 TV]]의 'NHK 프로그램 가이드'에서 다루어졌으며 도쿄 대지진의 군집 장면의 녹음 현장이 소개되었다.
* 각색: 쓰카와 이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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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고바야시 교지
* 테마 음악: [[장 시벨리우스|시벨리우스]] [[교향곡 1번 (시벨리우스)|교향곡 1번]]
**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의 [[뉴욕 필하모닉]] 연주판([[1967년]])을 사용. 오프닝은 제 1악장,엔딩은 제 4악장에서 발췌. BGM도 제 4악장 부분이 많이 사용되었다.
 
== 만화 ==
{{참고|일본 침몰 (만화)|설명=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 [[사이토 다카오]]에 의한 만화가 [[주간 소년 챔피언]]에 연재되어 [[고단샤]]에서 단행본이 출판되었다.
* [[2006년]]부터2006년부터 이시키 도키히코에 의한 만화가 [[빅 코믹 스피리츠]]에 연재되고 있다.
 
== 관련 상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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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현되지 않은 영화 구성안 ==
=== '속일본 침몰'의 기획===
[[1973년]] 말 석간지에 [[도호]]의 다음 해 이후의 대작 라인업의 광고가 나왔을 때 "에스파이", "노스트라다무스 대예언" 등과 함께 발표되었다. 제작 전인 각 작품에 '추첨으로 50명을 시사회에 초대'라고까지 고지되었다. 감독과 특기 감독에는 전작과 같은 모리타니 시로와 나카노 데루요시를 기용하였다. 타이틀 옆에 붙었던 캐치 카피는 '조국을 잃은 일본인은 세계사로부터 말살되는가?'였다. 플롯으로서는 제네바에서 재회하는 오노데라와 레이코, 난민이 된 일본인의 수난, 일본 정부의 자금과 국토 조달 활동 등이 그려진다고 했지만, 제작 기획은 사라지고 환상의 기획이 되었다.
 
=== '일본 침몰 1999'의 기획 ===
[[쇼치쿠]]가 [[1999년]] 12월부터 공개하는 [[2000년]]의2000년의 1월 영화로서 '일본 침몰 1999'의 제작 발표를 [[1998년]] [[9월 30일]]에30일에 긴자 도큐 호텔에서 했다. 감독은 [[오모리 가즈키]]를 기용했다. 오모리와 고마쓰는 둘 다 [[1995년]]의1995년의 [[한신·아와지 대지진]]의 이재민이기도 해, 그 경험을 살리려고 한신·아와지 대지진 당시 젊은이들의 자원봉사 활동이나 인터넷상의 동향을 포함시키려고 애썼으며 고마쓰도 젊은 세대의 묘사에 기대를 걸었다. 영상 면에서도 스펙타클한 장면에 CG를 활용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미쓰요시 슌지, 오하라 신이치 등의 스태프의 이름이 올랐다. 총 제작비 12억 엔, 배급 수입 목표 30억 엔의 대작이 될 예정이었지만, 당시 실적이 부진했던 쇼치쿠는 제작비를 조달하지 못하고, 1999년 [[3월 5일]]의5일의 쇼치쿠 사장의 기자 회견에서 '검토 중'이라고 답해 사실상의 제작 중지가 분명해졌다.<ref>당시 경영진 사이에서 내분이 일어나 영화 제작이 가능한 상태는 아니었다.</ref><ref>그 밖에도 [[한신·아와지 대지진]]의 이재민 단체로부터 '지진 재해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았는데, 이러한 영화를 제작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항의가 있었다고 여겨지지만, 영향의 유무는 알 수 없음.</ref> 결국, 2000년 쇼치쿠의 1월 영화로는 [[오시마 나기사]]의 '[[고하토]]'가 공개되었다.
 
== 소설 '일본 침몰 제 2부' ==
소설의 속편인 '일본 침몰 제 2부'가 [[2006년]]의2006년의 재영화화에 맞추어 [[다니 고슈]]와의 공저 형태로 2006년 7월에 출판되었다.
 
=== 집필 배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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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러디 ==
* [[일본 이외 전부침몰]]
:[[쓰쓰이 야스타카]] 작의 패러디 소설. 일본 침몰이 제 5회 세이운상(일본 장편 부문)을 수상한 것과 동시에 제 5회 세이운상(일본 단편 부문)을 수상. [[2006년]]의2006년의 '일본 침몰'의 공개에 편승하는 형태로 영화화가 발표되었다. 초대 영화판과 텔레비전 드라마판에서 각각 오노데라 역을 연기한 [[후지오카 히로시]], 무라노 다케노리가 출연해 화제가 되었다. 덧붙여 이쪽 영화판의 다도코로 박사 역은 데라다 미노리로, 데라다는 리메이크판 '일본 침몰'에서도 출연의 오퍼를 받고 있었다고 하지만 결국 이쪽을 선택했다. 또, 2006년판에 출연한 [[마쓰오 다카시]]가 기상 예보사 모리타 요시즈미 역으로 이쪽에도 출연하고 있다. 덧붙여 이 작품에는 고마쓰가 공인(보증 문서)을 주었다.
* 일본 표류
:작가 본인에 의한 자기 패러디. 마쓰시로 군발지진을 조사하던 중 천공을 실시했는데, 어쩐지 부드러운 것과 맞닥뜨렸고, 동시에 격한 지진이 일본 열도 모든 것을 덮쳐, 직후에 일본 열도는 남쪽을 향해 표류하기 시작한다. 지하에 메기가 있다는 것은 사실로, 일본 열도 아래에는 너무나 거대한 한 마리의 메기와 같은 괴물이 있었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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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 만화. 제목은 '일본 조금 침몰', 몇 차례에 걸쳐 연재되고 있었다. 국지적인 지반 침하에 의해 일본이 80 cm만 침몰(침수)했다고 하는 설정으로, 그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의 생활을 그린 작품.
*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제 21화 '안녕···노틸러스 호'에서 노틸러스 호가 격침되는 해구의 이름이 '케르마디크 해구'. 제 31화 '안녕히 레드 노아'에서의 설명이 [[1973년]]판1973년판 영화의 다도코로 교수의 설명의 패러디. 제 31화에는 그 밖에도 섬세한 패러디가 존재. 덧붙여 제 21화의 그림 콘티 및 제 31화의 감독은 [[2006년]]판의2006년판의 감독을 한 [[히구치 신지]].
 
== 관련 항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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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자료 ==
* 요코타 준야, "SF사전"(광제당, [[1977년]])
* 고마쓰 사쿄, "SF에의 유언"([[고분샤]], [[1997년]])
* "출판 데이터 북"(출판 뉴스사, 1997년)
* 히구치 니오후미, "'모래의 그릇'과 '일본 침몰' [[1970년대]] 일본의 초대형작 영화"([[지쿠마 서점]], [[2004년]])
* 고마쓰 사쿄·이오, "고마쓰 사쿄 매거진 제 23권"(가도카와 하루키 사무소, [[2006년]] - 해외판 '일본 침몰'에 대해)
* "키네마 순보"(키네마 순보사, 2006년 7월 하순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