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볼프강 폰 괴테: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Namo (토론 | 기여)
이전 문단 제목에 걸려있던 링크를 본문으로 옮겨옴. 물론 신앙과 종교는 차이가 있으나 문단 안의 단어에서 가장 유사한 단어를 원래 문단 제목이 가리킨 링크로 대체했다.
Maru4u (토론 | 기여)
잔글 그림 첨부
47번째 줄:
 
=== 이탈리아 ===
[[파일:Johann Heinrich Wilhelm Tischbein 007.jpg|thumb|200px| 이탈리아 여행 중의 괴테,《캄파냐 로마나에 있는 괴테》, 티슈바인(Johann Heinrich Wilhelm Tischbein) 1787년 작]]
그러나 다른 한편 초기 [[바이마르]]의 이 10년간은 궁정생활의 중압으로 마음의 안정을 빼앗겨 정돈된 창작활동을 할 여유를 주지 않았으므로 1년반에 걸쳐서 [[이탈리아]]로([[1786년]]-[[1788년]]) 여행을 떠났다. 이에 관해서는 후일 《[[이탈리아 기행]]》>(1816)과 《[[제2차 로마 체재]]》(1829)에 자상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탈리아에서 괴테는 남국의 밝은 자연과 [[고미술]]에 접함으로써 고귀한 내용을 완성된 형식으로 표현하는 [[독일 고전주의]] 문학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de:Iphigenie auf Tauris|타우리스 섬의 이피게니<!--근접하는 발음은 '이피게니이' not '니에'-->]]》(운문판 [[1786년]])와 《[[:de:Torquato Tasso (Goethe)|토르콰토 타소 <!--괴테의 희곡작품의 '제목', not '인물' 토르콰토 타소-->]]》(최초출판: [[1790년]] 2월)는 그의 대표작이며, 《[[에그몬트]]》(1787)는 슈투름 운트 드랑에서 고전주의로 옮겨가는 과도기의 작품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초기 [[바이마르]]의 이 10년간은 궁정생활의 중압으로 마음의 안정을 빼앗겨 정돈된 창작활동을 할 여유를 주지 않았으므로 1년반에 걸쳐서 [[이탈리아]]로([[1786년]]-[[1788년]]) 여행을 떠났다. 이에 관해서는 후일 《[[이탈리아 기행]]》>(1816)과 《[[제2차 로마 체재]]》(1829)에 자상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탈리아에서 괴테는 남국의 밝은 자연과 [[고미술]]에 접함으로써 고귀한 내용을 완성된 형식으로 표현하는 [[독일 고전주의]] 문학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de:Iphigenie auf Tauris|타우리스 섬의 이피게니<!--근접하는 발음은 '이피게니이' not '니에'-->]]》(운문판 [[1786년]])와 《[[:de:Torquato Tasso (Goethe)|토르콰토 타소 <!--괴테의 희곡작품의 '제목', not '인물' 토르콰토 타소-->]]》(최초출판: [[1790년]] 2월)는 그의 대표작이며, 《[[에그몬트]]》(1787)는 슈투름 운트 드랑에서 고전주의로 옮겨가는 과도기의 작품이다.
 
=== 바이마르 ===
줄 69 ⟶ 71:
* 《[[파우스트 (괴테)|파우스트]]》
* 《[[서동시집]]》
* 시 〈프로메테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