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디 바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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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스트라이크 존이 도입된 1986년 4월, 개막 경기인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전에서는 5타수 무안타를 기록했으나 8경기째에는 타율이 3할 대에 이르렀고, 5월에는 6경기 연속 멀티 안타를 기록하는 등 5월 하순부터 6월에 걸쳐 16타수 12안타로 타율 3할 6푼 9리에 올랐다. 5월 31일에는 그 해 처음으로 수위 타자로 나섰고 그 이후로는 물러나는 일 없이 타율을 한층 더 높이다가 7월 2일의 다이요전에서 5타수 4안타를 때려내 타율을 4할 2리까지 끌어올렸다.
 
7월 8일에 4할 7리를 기록하여 정점에 달한 이래 주니치의 [[고마쓰 다쓰오]]한테 4타수 무안타로 제압당해 타율이 4할 이하로 떨어졌고 그 후 25타수 무안타라는 극도의 슬럼프에 빠져 3할 7푼 6리로 낮아졌다가 8월에 들어간 12일에 3할 9푼 9리까지 다시 회복되었다. 8월 이후로는 각 경기 종료 시점에서 타율 4할을 넘어서는 일은 없었지만 8월에는 3할 9푼 이하로 낮아진 적도 없었다. 9월 3일과 19일에는 3할 8푼 9리로 약간 떨어지기도 했지만 9월 종료 시점에는 3할 9푼 4리로 높아졌다. 10월에도 타율 4할 대로 기록될 가능성은 남아 있었으나 7일의 다이요전과 이어지는 히로시마전에서 무안타를 기록해 3할 8푼 8리로 떨어졌다가 14일의 최종전인 다이요전에서 2타수 2안타를 때려내 3할 8푼 9리로 타율 부문의 일본 프로 야구 기록을 경신했다.<ref>여기까지의 기술과 출처는 《일본 프로 야구 기록 대감》(우사미 데쓰야 저, [[고단샤]], p.274 ~ 275) 중에서의 일부분이다.</ref> 그 외에도 47홈런, 109타점 등의 성적을 올려 [[지바 롯데 마린스|롯데 오리온스]]의 [[오치아이 히로미쓰]]와 함께 2년 연속 타격 부문 3관왕을 달성했다(1985년에 이어 3관왕을 석권한 1986년에는 래빗 볼의 사용 의혹이 급부상하는 만큼 홈런이 증가되는 등 ‘투저타고’ 현상이 일어났다).
 
바스는 규정 타석에 도달한 이후 지금까지 [[장훈|하리모토 이사오]]가 보유하고 있던 시즌 타율 3할 8푼 3리라는 일본 기록을 넘어서면 일본 투수들이 더 이상 승부를 걸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감독에게 직접 호소해 이후 경기들은 출전하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결국 타율이 그 이하를 기록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마지막까지 계속 타석에 섰다. 2013년 시즌 종료 기준으로 한신에서는 더 이상 홈런왕이 나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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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
오치아이가오치아이 히로미쓰가 트레이드로 [[주니치 드래건스]]에 이적하면서 언론에서는 이를 ‘3관왕 대결’이라며대결’이라고 표현하는 등 떠들석했지만 바스와 오치아이는 그 해에 성적이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무관에 그쳤다(1985년에 이어 3관왕을 석권한 1986년에는 래빗 볼의 사용 의혹이 급부상하는 만큼 홈런이 증가되는 등 ‘투저타고’ 현상이 일어났다). 또한 작년부터 나돌고 있던 [[요시다 요시오]] 감독과의 불화가갈등이 심해졌다. 무관으로 끝나면서 팀이 성적 부진으로 침체를 겪었던 그 해에 잡지 인터뷰에서 요시다 감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구단으로부터 징벌적인 조치로 벌금을 부과한 사건도 있었다. 이 벌금은 최종적으로 흐지부지 되면서 실제로 지불하지 않았다. 그리고 인터뷰를 했던 [[로버트 화이팅]]은 책임을 느끼고 바스에게 같은 금액을 지불했다.
 
==== 1988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