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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Duzong.jpg|thumb|right|남송 도종]]
'''남송 도종 조기'''(宋 度宗 趙禥, [[1240년]] ~ [[1274년]])은 [[남송]]의 제6대 황제(재위 : [[1264년]] ~ [[1274년]]). 휘는 조기(趙禥). 시호는 '''단문명무경효황제'''(端文明武景孝皇帝)이다.
== 생애 ==
[[남송 이종|이종]](理宗)의 동생 사영왕(嗣榮王) 조여예(趙與芮)의 아들이다.
[[가사도]](賈似道)가 재상으로 취임한 다음, [[1264년]](경정 5년)에는 이종이 붕어하고 도종이 즉위했다. 사실상 [[가사도]]의 괴뢰황제였다.
 
이종에게는 뒤를 이을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보우(寶祐) 원년([[1253년]]), 후사로 들어가 충왕(忠王)에 봉해졌다. 경정(景定) 원년([[1260년]]), 태자가 되었고 마침내 경정 5년([[1264년]]), 이종이 죽자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몽골을 격퇴한 영웅으로써 환영받게 된 [[가사도]]는 그 인기에 힘입어 재상이 되어, 전권을 임명받았다. [[가사도]]는 교묘한 정치수완을 발휘하고, 공전법 등 농정개혁에 힘쓰는 한편, 인기를 얻는 것도 잊지 않아 그 후 15년에 걸쳐 정권을 장악했다.
 
주색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고, 조정의 기강이 날로 쇠퇴하였고 변방의 일도 나날이 위급해졌다.
그러나 몽골 평원에서 아리크부케을 쓰러뜨리고 권력을 장악한 [[쿠빌라이]]가 다시 침공을 개시하여, 남송이 국력을 총동원하여 국토 방어의 거점으로 삼았던 양양(襄陽)을 1268년부터 1273년까지 5년간에 걸친 포위전 끝에 함락하면서 남송은 더이상의 저항할 힘이 없어졌고, [[가사도]]는 주위의 목소리에 몽골과 싸우기 위해 출발했으나 대패했다.
 
[[가사도]](賈似道)가 몽골을 격퇴하였고 자신을 황제로 세우는데 공로가 있다고 하여 태사(太師)로 임명하였다. 그때부터 가사도가 국정을 장악하였으므로 사실상 가사도의 괴뢰황제였다.
 
몽골을 격퇴한 영웅으로써 환영받게 된 [[가사도]]는 그 인기에 힘입어 재상이 되어, 전권을 임명받았다. [[가사도]]는가사도는 교묘한 정치수완을 발휘하고, 공전법 등 농정개혁에 힘쓰는 한편, 인기를 얻는 것도 잊지 않아 그 후 15년에 걸쳐 정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몽골 평원에서제국에서 아리크부케을[[아리크부케]]를 쓰러뜨리고 권력을 장악한 [[쿠빌라이]]가 다시 남송 침공을 개시하여, 남송이 국력을 총동원하여 국토 방어의 거점으로 삼았던 양양(襄陽)과 번성(樊城)을 1268년부터[[1268]]년부터 1273년까지[[1273년]]까지 5년간에 걸친 포위전 끝에 연이어 함락하면서 남송은 더이상의 저항할이상 힘이국면을 없어졌고,돌이킬 [[가사도]]는 주위의 목소리에 몽골과 싸우기 위해힘이 출발했으나없어지게 대패했다되었다.
 
{{중국 송 왕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