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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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1907년]] [[11월 8일]] [[대한제국]] [[경상북도]] [[달성군]] 하빈면 묘동 산골마을에서 [[사육신]] [[박팽년]]의 후손인 아버지 박기동과 어머니 손씨의 4녀로 태어났다. [[2000년]] [[1월 3일]] 오전 3시 숙환으로 향년 94세의 나이로 삼성서울병원에서 별세하였다.
 
신부는 호암보다 세 살 연상의 박두을. 1907년 11월8일 경북 달성군 하빈면 묘동 산골마을에서 사육신 박팽년의 후손인 아버지와 어머니 손씨의 4녀로 태어났다. 묘동마을은 순천 박씨 토착촌이었다. 박팽년의[[박팽년]]의 후손답게 선비였던 아버지 박씨와 ‘교동댁’으로 불렸던 어머니 손에서 박 여사는 엄격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릴 적에 얼굴도 곱고 마음씨도 좋아 ‘두리’라는 애칭으로 불렸다고 한다. 십오륙 세 되던 무렵 어느 날, 절에서 시주를 나온 한 스님으로부터 “처녀는 앞으로 왕비가 아니면 일국의 왕 못지않은 갑부가 될 사람을 만나 그 안방마님이 되겠소”라는 말을 하였는데 이 일화가 사실이라면 스님의 예견이 적중한 셈이다. 박두을은 [[1929년]]에 [[이병철]]과 혼인하였다. <ref name="박두을"/>
 
== 전해지는 야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