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틴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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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 날, 기와 레몽의 기독교 연합군은 티베리아스를 구하기 위해 세포리스를 출발하였는데 레몽이 선발대를 맡고 기는 본진을 [[이벨린의 발리앙|발리앙]]과 레날드, [[종교 기사단|기사단]]은 후위를 맡았다. 살라딘은 기가 자신의 미끼를 물었다고 생각하고 주력 부대로 하여금 십자군의 진군로를 포위하고 보급로를 끊었다. 십자군은 하틴 마을 근처의 구릉지에서 이슬람군에 포위된 채 숙영했다. 이슬람군은 근처의 우물을 장악하고 십자군을 고립시켰다.
[[7월 4일]] 새벽 이슬람군은 연기를 피워 십자군의 시야를 가렸고 밤새 보강된 병력으로 십자군을 포위했다. 십자군은 전 날의 행군과 밤새 물을 구하지 못해 심한 갈증으로
==결과==
대부분의 십자군 기사와 보병은 전투 중에 죽었고 기와 [[샤티용의 레날드|레날드]] 등 많은 십자군 장군들이 포로로 잡혔다. 레몽과 발리앙은 겨우 살아서 도망쳤다. 살라흐 앗 딘은 막사에 끌려온 기에게
이 전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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