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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측에는 50명의 사망자, 가옥 262호의 피해가 나왔다.
 
폭격기는 일본 열도를 횡단해, 그 중 12기는 중국 동부로본토에 추락, 3기는 중국 영해에 추락, 나머지 착륙했다(1기는 [[소비에트 연방|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에 착륙했고,착륙했다. 소련에 착륙한 폭격기의 승무원은 억류되었다가 얄타밀약 성립후 석방됨)석방되었다. 승무원은 전사가 1명, 행방 불명이 2명, 포로가 8명으로8명이고, 나머지는 [[미국]]으로 귀환했다. [[대본영]]은 이 피해를 "적기 9기를 격추했으며, 손해는 적다"고 포장해 발표했다. 그러나 폭격 당일의 날씨는 맑았으며, 추락한 항공기 시민에게서는민간인에게는 단 1기도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본영]]의 발표에 대해 "웃기지 마라. 황군은 아무것도 격추하지 못했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편, 일본군에 체포된 폭격기 승무원은 도시의 무차별 폭격을 실시한 혐의에 대해 포로가 아닌 전쟁범죄자로서 다루어져 조종사 2명과 사격수 1명이 처형되었으며, 5명은 징역을 살았다. 미국은 제네바 협약을 어긴 사형에 대해 "야만적인 만행"이라고 비판했으며, [[20세기 폭스]]는 [[1944년]]에 선전 영화 《[[퍼플 하트]]》에서 이들을 다루었다.
 
== 영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