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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11월 5일]]에 윤익선이 세운 한국인 소유의 최초의 사립공공도서관이다. 당시 이름은 '''경성도서관'''으로 일본인 소유의 경성문고([[1908년]]~[[1919년]]) 장서 및 지역 유지들의 기부한 도서 등으로 [[11월 27일]]에 정식으로 개관하였다. 한편 [[1921년]] [[9월 10일]]에 이범승이 [[파고다 공원]] 옆 옛 한국군악대 건물을 총독부로부터 불하받아 '''임시신문잡지열람소'''를 개설하면서 통합하여 옛 한국군악대 건물은 본관으로, 취운정은 분관<ref>분관은 윤익선이 만주 간도동흥중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으로 부임하기 위해 경영에서 손을 떼면서 1923년 7월에 폐관하였다.</ref>(한서;漢書 전용)으로 개편하였으며 개관 당시 35,000권의 장서를 갖추었다. 이용객 증가로 [[민영휘]]의 기부를 받아 [[1923년]] [[7월 28일]]에 석조건물을 새로 세워서 낙성하였다. 경성도서관은 도서출납 이외에 교육의 사각지대에 있던 부녀자 및 아동 등을 대상으로 한 교육 및 전시회 등을 하는 등 평생교육기관으로의 역할을 하였으나 경영난으로 [[1924년]] [[10월 1일]]부터 수차례 무기휴관을 반복하였다. 개관 초기부터 민족 계몽의 장으로서 발전을 위한 국내외의 지원이 끊이지 않았으나 최종적으로 [[1926년]] [[3월 25일]]에 경성부에 양도하여 동년 [[4월 1일]] 경성부립도서관 종로분관이 되었다.<ref>부립도서관 전환 직전 이를 아쉬워한 한국인들이 도서관으로 몰려들면서 일시적으로 만원사태를 이루기도 하였다.</ref> 후임관장으로 이범승의 친척인 [[이긍종]]이 부임하였으며 이후로도 한국인으로만 직원이 이루어지며 민족 도서관으로서의 명맥을 유지하였다. [[1945년]] [[9월 18일]]에는 분관에서 격상되어 서울시립 종로도서관이 되었다.
 
이후 파고다공원 일대의 재개발을 이유로 도서관의 철거가 예정되었는데, 이용자들의 반대로 [[1967년]] [[8월 10일]] 휴관에 들어갔으며 이듬해 [[8월 20일]] 사직공원의 현재 위치에 건물을 세워 이사하였다.<ref>[http://jnlib.sen.go.kr/jnlib_index.jsp 도서관 안내 - 종로도서관 홈페이지]</ref> [[1979년]] [[4월5월 30일4일]]부터는 아동열람실이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으로 독립운영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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