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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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은 내가 사문난적이라 한 것은 바로 그 '경솔함'을 말한 것일 뿐이다." "그대는 윤휴의 재주와 기지가 특히 고명하다고 탄복하는데, (옛날 중국의 역적들인) 왕망, 동탁, 조조 같은 무리가 다 고명했으니, 윤휴도 그들과 같은 글-도둑이다. 그대도 그와 협조했으니, 이후에 만일 임금이 춘추의 법(春秋大義)에 따라 죄를 다스릴 때에는 (그 추종자를 먼저 치는 법인데), 그때 그대가 윤휴에 앞서 죄를 받을 것이다.'라고 강하게 나왔다. 이에 어쩔 수 없이 [[윤선거]]는 [[윤휴]]와 결별할 것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윤선거는 계속 윤휴와 교제하였고, 송시열과 이유태 등은 계룡산 동학사에서 또 한차례 친구 동료들을 모아 토론하였다. 송시열 윤선거 이유태 등 몇 사람은 다시 [[공주시|공주]] [[동학사]]에 모였다. 이 모임에서 다시 윤휴에 대해서 종일 논쟁하다 해가 저물게 되었다. 이에 그날 저녁 토론이 끝나갈 무렵 송시열이 윤선거에게 길게 논쟁할 것 없다. 간단히 말해서, 주자가 옳으냐, 윤휴가 옳으냐?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른지 한마디로 말하라며 추궁했다. [[윤선거]]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옳고 그름(是非) 보다도 흑백으로 본다면 주희는 백, 윤휴는 흑이며 음양(陰陽)으로 본다면 주희는 양, 윤휴는 음이다." 라고 말하고, 이어 윤휴는 음이니 절교를 하겠다고 하고, 그 자리를 빠져 나왔다. 이에 이유태는 윤선거가 원래 비겁한 사람으로, 오늘 그의 대답은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윤휴는 음이며 절교를 하겠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1655년]] 봄에 윤선거가 편지를 송시열에게 보내서, 흑백론-음양론은 표현상 그런 것이고, 윤휴의 인격을 말한 것은 아니다 라고 했다해명했다. 이에 송시열은 윤선거에 대해서 풀기 어려운 악감정을 가졌다. 그리고 송시열은 [[윤선거]]를 잠재적인 논적으로적으로 보고 경계하게 되었다.
 
===== 북벌준비 계획과 실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