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의: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8번째 줄:
위연을 주살한 후, 양의는 성도로 돌아와 중군사가 되었으나 일이 없으므로 한가하게 지냈다. 양의는 퇴각에 성공했고 위연을 주살하였으므로 자신의 공이 크다고 여겨 마땅히 제갈량의 뒤를 이어야 한다고 여겼으나, 제갈량은 양의의 성격이 좁으므로 [[장완]]을 후계로 삼아야 한다고 여겼다. 이때 장완은 아직 대장군에 임명되지는 않았고(양의가 쫓겨난 후에야 임명), 다만 상서령·익주자사가 되었는데, 양의는 자기 혼자서만 장완보다 나이나 경력이나 재능이나 모두 월등하다고 여겼으므로 원망하여 탄식하는 소리를 일삼았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양의의 말에절제가 없음을 두려워했고 감히 양의를 따르려 하지 않았다. 다만 비의가 양의를 위로하였는데, 양의는 비의에게 원망을 토로하며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하고 말았다.
 
{{인용문2|'''위나라로 귀순했더라면 이런 치욕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기회가 되면 언제라도 위나라로 가겠다.'''}}
 
비의는 은밀히 이 말을 상주했다. 양의의 이 말 한마디가 온 촉한을 뒤집어놓았다. 건흥 13년(235년) 정월, 양의는 파직되어 서민이 되었고, 한가군에 유배되었다. 유배지에서도 양의는 비방하는 말을 하여, 마침내 군에 하명하여 양의를 사로잡으라고 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