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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세조는 1456년(세조 2) 6월 3일에는 함양 목사(牧使)에게 치서(馳書)하기를,
“건장하고 부지런하며 조심성 있는 사람을 골라서 이어(李𤥽)의 배소(配所) 네 모퉁이를 나누어 지키게 하고, 당자와 잡인(雜人)의 출입을 엄하게 금방(禁防)하되, 힘써 안정(安靜)을 기하여 놀라지 말게 하라." 는 유시를 하기도 하였고,<ref>[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_king.jsp?tid=kga&pos=7&mTree=0&inResult=0&indextype=1&keyword=%EA%B8%88%EB%B0%A9 세조 4권, 2년(1456 병자 / 명 경태(景泰) 7년) 6월 3일(신축) 3번째기사] "금성 대군등의의 배소를 지켜 당자와 잡인의 출입을 금하게 하다"</ref> 1457년(세조 3) 6월 28일에는 순흥 부사(順興府使)에게 유시(諭示)하기를,
“도내 함양(咸陽)에 안치(安置)된 이어(李𤥽) 금방(禁防)을 허술하게 하면 수령(守令)은 진실로 죄를 받을 것이고, 감사(監司)도 또한 죄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니 다시 금방을 엄하게 더하라.”<ref>[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_king.jsp?tid=kga&pos=13&mTree=0&inResult=0&indextype=1&keyword=%EA%B8%88%EB%B0%A9 세조 8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6월 28일(경신) 3번째기사] "경상·전라 관찰사에게 도내에 안치된 종친의 금방을 엄하게 할 것을 명하다"</ref> 하였다.
 
그 뒤 모든 전토와 노비를 몰수당하고 1459년 음력 5월 29일 병사하였다.<ref>[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_king.jsp?tid=kga&pos=8&mTree=0&inResult=0&indextype=1&keyword=%ED%95%9C%EB%82%A8%EA%B5%B0+%EC%A3%BD 세조 16권, 5년(1459 기묘 / 명 천순(天順) 3년) 5월 29일(경술) 5번째기사] "함양에 안치된 이어가 병으로 죽다"</ref> <ref>[http://people.aks.ac.kr/front/tabCon/ppl/pplView.aks?pplId=PPL_6JOa_A9999_1_0014162&curSetPos=0&curSPos=0&isEQ=true&kristalSearchArea=P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한남군]</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