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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불응하고 [[예산군|예산현]]을 공략한 봉기민(蜂起民)들은 [[1177년]]고려 명종 7년 정월에 관군의 진압에 항복했다가 조정의 비열한 처사에 불만하고 그 해 2월 재봉기하였다
 
지배계급만을 대변하던, [[예산군|예산현]] 덕산에 소재한 [[가야사]](倻倻寺)와 직산에 위치한있는 홍경원(弘慶院)을 휩쓴 봉기민은 [[아산시|아주]](牙州)와 [[청주시|청주청주목]] 공격했다. 고려 조정은 충순현을 명학소로 재강등하고 대규모 관군을 동원해 봉기민을 맹렬히 총공격하였다. 이때는 농번기라 봉기민 중 농민병이 이탈하고 식량과 무기가 매우 부족하여 정세가 불리해졌다. 이리하여 망이와 망소이를 위시한 봉기민들은 체포되고 봉기는 7월에 진압당했다.
 
망이와 망소이의 봉기가 시작되었던 명학소 위치는 현재 [[대전광역시]] 서구 탄방동(당시 공주군 유성현)으로 추정되어 탄방동 1084번지 남선봉에 소재한 남선근린공원에 기념탑이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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