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병: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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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Detaille 4th French hussar at Friedland.jpg|thumb|300px|[[프랑스 제4후사르연대]].]]
'''경기병'''(Light Cavalry)은 경무장 및 경갑한 말탄 병사들을 가리키며 중갑한 기수들인 중기병과
== 역사적 이용 ==
[[로마-
== 전략, 전술적 이용 ==
경기병은 대규모 전면전보다는 소규모 접전이나 약탈전, 정보전에 특화된 기병이었다. 이들은 전투를 직접 실행하기보다는 전투 이전 적의 마을 등을 공격해 약탈하여 경제적 손실을 야기하거나 적을 정찰하고, 전투 시에는 적을 유인하거나 패주하는 적을 추격하는 것이 그 용도였다. 이러한 특성에서 나아가, 경기병의 용도는 시대적, 경제적 배경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사용될 수 있었으며 몽골을 비롯한 유목국가의 경기병대는 전면전에서도 다양한 활약을 할 수 있었으며, [[후사르]]나 [[울란]]과 같은 경기병들은 일반적인 경기병과 달리 돌격을 통한 충격력의 확보가 목적이 되기도 했다.
== 특성 ==
경기병 부대는 비교적 경장의 무장과 작고 빠른 말을 장비로 삼았으며 본 목적이 약탈과 패주하는 적의 추격, 살육 등이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부대와는 다른 특성을 띄게 되었다. 이들은 주로 중기병에 비해 하층민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전면전이 아닌 약탈전이나 소규모 접전에 특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대체로 거칠고 난폭한 병사들이 주를 이루기 쉬웠으며, 자유로운 규율 때문에 제멋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용병으로 고용된 경기병대의 경우, [[백산 전투]] 당시 신교도 측에 고용되었던 [[트란실바니아]] 경기병대 처럼 고용주 측 지휘관의 명령을 듣지 않고 전황이나 개인적 이익에 따라 제멋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아 전투에서의 패배를 야기하기도 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경기병대의 원활한 사용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으며, 이들이 전면전에 적합하지 않은 다른 이유이기도 했다. 이러한 특성은 경기병을 주력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유목국가나 민족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으며, [[국민개병제]]를 통한 체계적인 병력 수급 체계가 잡히기 이전까지 경기병의 용도는 부수적인 목적에 머물렀다.
== 중세기 ==
중세기에 들어와서야 여러가지 유형의 경기병들이 발달하였다.
* [[호빌라]] : 원래는 아일랜드에서 시작하였으나 후에 14, 15세기 잉글랜드 및
* [[히네테스]] : 스페인의 투창 경기병으로 [[레콘키스타]] 때 통속화되었다.
* [[스트라디오트]] : [[알바니아]]에 기원을 두고 15세기 후기에 이탈리아에서 경기병으로서의 용병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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