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키아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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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페스]]의 트라키아 왕국의 [[로메탈케스 3세]]가 46년에 그의 아내에게 살해당하고, 트라키아는 [[대행정무관]]이 관리하는 공식적인 로마의 속주로 흡수되었고, 나중에는 [[근위대장]]에게 관리됐다. 로마의 중앙 통치력은 [[페린투스]]를 기반으로 했지만, 속주가 포함된 지역은 총독에게 부여된 부하의 군대하에 있는 독특한 경우이다. 큰 규모의 도심지의 부족은 트라키아를 관리하기 힘들게 했지만, 마침내 로마의 지배하에 번영을 한다. 하지만 로마화는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 그 이유로는 그 당시의 대다수의 트라키아인들이 [[헬레니즘화]]가 되어버린 이유를 꼽고있다.
 
트라키아의 로마 통치력은 주로 [[모이시아]]에 배치된 군단들에 기댔다. 시골 지역의 트라키아인들은 로마의 지배력으로부터 거리가 있었는데, 그건 분명히 모이시아의 군단에게 지역의 병사들을 보조해준지원해준 영향일것이다. 다음 몇 세기가 지나서, 속주는 [[게르만 부족]]에게 정기적이며 점차 강도가 강해진 공격을 받았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 통치 시기에 방어를 위해서 100개가 넘는 [[로마 군단|군단]] 요새가 건설됐다.
 
[[모이시아]]에 트라키아인들은 로마화가 된 반면, 나머지 트라키아인들은 대부분 헬레니즘화가 된 상태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