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릉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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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1546년]](명종 1) [[6월 6일]]([[음력 5월 9일)]]) 한성 인달방 [[도정궁]](都正宮)에서 태어났다. [[조선 중종|중종]]의 서손자이고, 법통상 아버지는 [[금원군|금원군 이영]]이며, 어머니는 충훈부도사(忠勳府都事) 해주인(海州人) [[정승휴]](鄭承休)의 딸로 파징군부인 정씨(波澄郡夫人 鄭氏)이다. 생부는 덕흥대원군이며, 생모는 하동부대부인 정씨이다.
 
부인은 참판(參判) 평산인(平山人) [[신여종]](申汝悰)의 딸로 평산군부인 신씨(平山郡夫人 申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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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의 서3남이자 이복 백부인 금원군에게 양자로 입양되어 하릉정(河陵正)에 제수받고, 선조가 즉위한 뒤 대원군묘(大院君廟, [[덕흥궁]])에 친향(親享)을 하고, 특별 승급되어 현록대부 하릉군(河陵君)에 봉작되었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금강산]]으로 피난, 은신하였다가<ref name="sonsu26"/> 통천군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통천에도 왜군이 진입하였다. 이때 관북(關北)의 토적(土賊)들이 왜적을 인도하여 산을 수색한다는 말을 듣고 핍박당할까 근심하다 [[1592년]](선조 25) [[7월 25일]]([[음력 6월 17일)]])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ref name="sonsu26"/> 사망 당시 향년 46세였다. 효정(孝貞)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 사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