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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료 생활 ===
[[991년]] 그는 무관(武官)으로 관직에 본격 출사하였으며 [[997년]] [[고려]] 제6대 왕인 [[고려 성종|성종]]이 뒤를 이을 아들 없이 죽고 [[고려 목종|목종]](穆宗 : [[고려 경종|경종]]의 아들)이 보위에 오르자, 이때 왕의 나이가 18세임에도 불구하고 모후인 [[천추태후]](千秋太后)가 섭정을 하게 됨에 따라 외척이 다시 등장했다. 앞서 [[천추태후]]와 추문을 일으켜 유배되었던 [[김치양]](金致陽)도 다시 불려와 중용되었다. [[김치양]]은 마음대로 정치를 하면서 1003년([[고려 목종|목종]] 6년) [[천추태후]]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고려 목종]]의 후계자로 삼으려고 했다. 이때 그는 여러 관직을 거쳐 중추사 우상시로 있었으며 외직으로 나가 서북면도순검사가 되었다.
 
[[고려 목종]]이 병석에 누워 있으면서 [[김치양]]의 계획을 알고 황보유의를 파견하여 [[고려 현종|대량원군 순]]을 맞아 오게 하고 또 전중감 이주정이 [[김치양]]에게 아부하는 것을 알고 임시로 그를 서북면 도순검부사로 임명하여 보내면서 즉일로 강조를 다시 궐내로 불러 들여 숙위 하도록 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