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축옥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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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사건을 취조하는 동안 [[김제남 (1562년)|김제남]]과 [[인목왕후]] 부녀가 [[의인왕후]](懿仁王后)의 무덤에 무당을 보내 저주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로 인해 [[김제남 (1562년)|김제남]]은 사사(賜死)되었고 그의 세 아들 역시 처형당했으며, [[영창대군]]은 폐서인되어 [[강화도]]에 유배되었다. 뿐만 아니라 [[신흠]](申欽)·[[이항복]](李恒福)·[[이덕형]](李德馨)을 비롯한 서인과 남인 세력이 대부분 몰락하고 대북이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 사건이 계축년(癸丑年, [[1613년]])에 일어났으므로 계축옥사라고 한다.
 
===관련 지문===
2009년 수능에 출제된 문제이다.
{인용문|
내가 비록 부덕하더라도 일국의 국모 노릇을 한 지 여러 해가 되었다. 그는 선왕의 아들이니 나를 어미로 여기지 않을 수 없는데도 내 부모를 죽이고 품속의 어린 자식을 빼앗아 죽였으며, 나를 유폐하여 곤욕을 치르게 했다. 어디 그뿐인가. 중국이 우리나라를 다시 일으켜 준 은혜를 저버리고, 속으로 다른 뜻을 품고 오랑캐에게 성의를 베풀었다.}
위의 글에서 '나'는 인목대비([[인목왕후]]), '그'는 광해군이다.
 
[[분류:사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