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아테스 4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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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패하여 그의 군대중 더 큰 부분을 잃었다. 안토니는 아르메니아 왕, 아르타바스데스에 의해 배반당하였다고 믿고 기원전 34년 그의 왕국을 침입하여 그를 체포하고 또다른 아트로파테네의 왕 아르타바스데스와 조약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옥타비안과의[[옥타비아누스]]와의 전쟁이 발발하자 안토니는[[안토니우스]]는 그의 정복을 유지할수 없었다. 프라아테스는 아트로파테네를 회복하고 아르타바스데스의 아들 아르타크세스를 다시 아르메니아로 보냈다. 그러나 그의 많은 잔인함에 의해서 프라아테스는 그의 백성의 불신임을 일어키고 그들은 티리다테스 2세를 기원전 32년 왕좌로 뽑았다.
 
프라아테스는 스키타이에 의해 복위되었다.그리고 티리다테스는 시리아로 달아났다. 로마는 아우구스투스가 로마 장군 마르쿠스 니키니우스 [[크라수스]]의 파르티아에 대한 패배에 보복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는 협상에 만족하였는데 그에 따라 프라아테스는 포로와 정복된 매를 돌려주었다. 아르메니아 왕국도 역시 로마 속주로 인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