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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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6월 인근 지역대표의 대표를 뽑는 ‘복(複)대표대회’를 열어 새 임원을 뽑고 새 규약을 채택했다. 창립 당시와는 달리 상향식으로 모인 의견의 결과는 반수 가까운 [[사회주의]]자가 간부로 뽑히고, [[허헌]]이 집행위원장이 되었다. [[1929년]] [[11월 3일]]에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신간회는 진상조사위원을 시위 현장에 파견했는데, 이는 조사만이 아닌 선전 활동의 일환으로 시위를 지원했다. 이어 신간회 중앙본부([[경성부]])에서는 언론사, 종교세력, 근우회, 조선청년 총동맹, 조선노동총동맹 등과 함께 대규모의 [[민중]]대회를 준비하다가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조병옥]], [[이관용]], [[허헌]] 등 간부 44명, 총 90여 명이 체포돼 위기를 맞았다.([[1929년]] [[12월 3일]]) 이를‘민중대회사건’이라고 한다.
 
신간회는 '''원산 노동자 총파업을총파업'''을 지원하는 등 노동 운동을 지도하였다.
 
=== 해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