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다치 미쓰히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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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피소드 ==
=== 일본 시리즈 ===
[[일본 선수권 시리즈|일본 시리즈]]에 강했는데 ‘[[ON포]]’가 있는 [[V9 (요미우리 자이언츠)|V9]]의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대해 좋은 성적을 냈던 몇 안되는 투수이다. 일본 시리즈 통산 9승(5패)은 역대 3위 타이 기록에 해당되며 그중 요미우리와의 경기에서 8승 4패의 좋은 성적을 남겼다. 요미우리의 V9시대, 특히 요미우리와의 상대 전적에서 한큐는 8승 20패였는데 한큐가 올렸던 8승 가운데 5승이 아다치에 의한 것이다.
 
[[1976년 일본 시리즈]]에서는 한큐가 3연승을 한 뒤 내리 3연패를 기록했는데 그리고 11월 2일에 열린 7차전에서 당시 36세였던 아다치가 등판했다. 요미우리가 찬스를 잡으면 5만 명이나 되는 자이언츠를 응원하는 분위기 속에서 아다치는 ‘떠들어라, 더 크게 떠들어라…’ 라고 중얼거리면서 완투승을 올렸는데 한큐의 2년 연속 일본 시리즈 우승, ‘타도 요미우리’에게 공헌했다. 아다치는 당시 이 경기를 이렇게 회고했다.
 
{{인용문|
긴장감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넋을 잃어버린 것은 없었다. 상대(요미우리)팀도 흥분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는 냉정한 것이 다루기 쉬웠다. … ON([[오 사다하루]]와 [[나가시마 시게오]]의 영문 이니셜)은 두 사람 있으면 두렵지만 한 명(오 사다하루)이라면 모두 걸어나가게 하면 되니까 두렵지 않다. 승부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서도 홈런만 맞지 않는다면 괜찮다는 기분으로 50% 정도의 힘으로 던지면 된다. 다른 타자들과 승부하는 것이 편하다는 건 당연하다.}}
 
실제로 아다치는 2차전과 4차전에서 사다하루에게 홈런을 맞았지만 일본 시리즈 우승을 결정짓는 7차전에서는 사다하루에게 두 차례의 볼넷을 주면서 중요한 시기를 잘 틀어막아 완투승을 거뒀다.
 
또한 무릎을 다친 1978년에 시즌 4승 6패라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지만 시즌 종반부터 일본 시리즈에 조준을 맞춰 조정했고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야쿠르트 스왈로스]]와 맞붙었던 [[1978년 일본 시리즈|같은 해 일본 시리즈]]에서는 3차전에서 완봉승을 거뒀다. 이 때 인터뷰에서 “일본 시리즈는 [[한큐 니시노미야 스타디움|니시노미야]](5차전 경기 장소)에서 끝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1977년 일본 시리즈]] 2차전(대 요미우리)과 두 경기 연속 완봉승은 일본 시리즈 타이 기록이며 또한 한큐의 투수로서 일본 시리즈에서 완봉승을 기록한 건 아다치뿐이다.
 
=== 야마다 히사시와의 관계 ===
스트레이트 중심의 투구 폼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한 야마다 히사시는 아다치에게 [[싱커]]를 던지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청했지만 “그런 것은 기억하지 않아도 좋다!”라고 거부했다. 이것은 “직구로 승부할 수 있는 시기는 그것을 살린 투구를 하는 것이다”라는 자신의 경험에 의한 것이었지만 후에 “자신보다 젊은 야마다가 싱커를 기억하면 대단한 위협이 된다고 느꼈다. 팀에 같은 타입의 투수는 2명 정도 필요 없다”라고 정직한 기분을 드러냈다.<ref name="MakyuuDensetsu">분슌 비주얼 문고 《마구 열전》 - 문예춘추 발행</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