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남생: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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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생'''(淵男生, [[634년]]~[[679년]])은 [[연개소문]]의 맏아들이며, 제2대 [[대막리지]]이다. 당나라에서는 [[당 고조]]의 휘인 ‘연’을 쓰는 것을 피해서 '''[[천남생]]'''(泉男生)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천남생묘지명》에 따르면 요동군 평양성에서 출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연개소문이 세상을 뜨자 연남생, [[연남건]], [[연남산]], [[연정토]] 넷이 권력 다툼을 크게 벌였다. 결국 연남생이 얼마 동안 [[대막리지]]에 오르게 되었으나, 남건·남산이 남생의 아들 헌충(獻忠)을 죽이고, 남건이 스스로 대막리지가 되어 남생을 쳤다. 이에 남생은 패하여 국내성으로 달아나 그의 아들 [[연헌성|헌성]](獻誠)을 [[당나라]]에 보내어 항복하고 구원을 청하였다.
 
결국 [[668년]], 당나라는 연남생을 앞세워 [[고구려]]를 공격하였다. 연남생은 [[요동]] 지역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하였다. 또한 당나라 총사령관 [[이세적|이적]]과 함께 고구려 수도인 [[평양|평양성]]을 공격한다. 연남생은 당나라로부터 작위를 하사받았다. 연남생은 [[안동도호부]]에서 머물다가 그곳에서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