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철 카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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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산 ==
=== 논문집과 사후 간행물 ===
 
카슨은 자신의 원고와 논문을 바이네케의 희귀 문서 및 도서 보관 도서관의 첨단 시설을 활용하기 위해서 예일대학교에 남겼다. 그녀의 오랜 대리인이자 문헌 상속관리인이었던 마리 로델은 거의 2년을 카슨의 논문, 편지등을 정리하는데 보냈고 또 편지의 발신인들에게 그들의 편지를 보내서 그들이 동의하는 것들만 서고에 보관되도록 했다. <ref>{{harvnb|Lear|1997|pp=467–8, 477, 482–3}} See also the Beinecke [http://hdl.handle.net/10079/fa/beinecke.carson finding aid for the Rachel Carson Papers].</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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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레이철(Always Rachel)》이라는 편지집에 더해서 1998년, 카슨의 미출간 원고들이 《잃어버린 숲: 레이첼 카슨 글의 발견》 이라는 제목으로 린다 리어가 편집해서 출판되었다. 모든 카슨의 책들은 아직도 출간되고 있다. <ref name="Murphy 25"/>
 
=== 풀뿌리 환경보호운동과 환경보호청 ===
카슨의 책들은 환경운동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침묵의 봄》은 특히 1960년대에 태동하던 사회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환경 엔지니어이고 카슨 학자인, 패트리샤 하이네스에 의하면 "《침묵의 봄》은 세계의 힘의 균형을 바꾸었다. 그 이후에는 아무도 진보의 필요악으로 오염을 쉽게 그리고 무비판적으로 팔 수 없게 되었다." <ref>{{harvnb|Hynes|1989|p=3}}</ref> 카슨의 책과 그것이 촉발한 운동은 1960대에 부분적으로 깊은생태계 운동과 풀뿌리 환경운동의 전반적인 힘에 적어도 부분적으로 기여했다. 그것들은 또한 에코페미니즘(ecofeminism)의 등장과 많은 페미니스트 과학자들에게도 영향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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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에 닉슨 행정부에 의한 미국 환경보호청 (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의 설립은 카슨의 또 다른 우려가 빛을 보게된 것이다. 그때까지는 같은 기관(미국 농무부)가 농약의 규제와 농업에 관한 사항을 동시에 담당해야 했었다. 이 부처가 농업정책이상으로 야생과 다른 환경에 대한 영향에 관해서 책임질 수 없기 때문에, 카슨은 이것은 이해의 상충(conflict of interests)이라고 보았다. 설립후 15년이 지나서, 한 언론인은 환경보호청을 "《침묵의 봄》의 뻗어나온 그림자"라고 불렀다. 1972년의 "연방 살충제, 버섯 및 곰팡이 제거제, 설치류제거제에 관한 법"의 시행과 같은 이 부서의 초창기 업무들은 카슨의 저서들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들이다. <ref>{{harvnb|Hynes|1989|pp=47–8, 148–163}}</ref>
 
1980년대에 들어서 레이건 행정부의 경제성장 중심의 정책은 카슨의 저작을 반영한 환경정책을 되돌리게 되었다. <ref>{{harvnb|Lytle|2007|pp=217–220}}; Jeffrey K. Stine, "Natural Resources and Environmental Policy" in ''The Reagan Presidency: Pragmatic Conservatism and Its Legacies'', edited by W. Elliott Browlee and Hugh Davis Graham. Lawrence, KS: University of Kansas Press, 2003. ISBN 0-7006-1268-8</ref>
 
== 참고 ==
{{reflis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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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해양생물학자]]
[[분류:존스 홉킨스 대학교 동문]]
 
{{Link FA|de}}
{{Link FA|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