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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도자기 ===
한국의 도자기는 비록 중국의 영향을 받았으나 종주국이었던 중국조차도 감탄할 만큼 그 품질과 아름다움이 뛰어나 동아시아 각국에서 한국의 도자기를 수입하기도 했다.
==== 고려 이전의선사시대의 도자기 ====
{{본문|한국의 신석기 시대}}
 
[[File:Korea-Neolithic.age-Pot-02.jpg|thumbnail|[[빗살무늬토기]].]]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토기를 만들어 식량을 저장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구석기시대의 유랑생활에서 벗어나 강가에서 [[어로]]나 [[수렵]]을 하고, 나중에는 농사를 짓게 되면서 발생한 일이었다. 신석기시대에 만들어진 토기는 야외에서 말리거나 구덩이를 파고 700도 정도의 온도에서 구운 것이었다. 낮은 소성온도로 인해 내구성에 한계가 있었다. 고고학적으로 살펴보면 한국에서는 덧무늬토기, 눌러찍기무늬토기, [[빗살무늬토기]], 번개무늬토기 등이 만들어졌으며, 각각의 토기는 지표연대를 가늠하는 중요유물이 된다.
 
==== 고조선의 도자기 ====
{{본문|한국의 청동기 시대}}
 
이 시기에는 표면을 갈아 윤기를 낸 토기가 등장한다. 붉은 간토기(홍도), 검은 간토기(흑도) 등이 그것이다. 이외에 점차 장식이 적어지는 민무늬 토기(덧띠 토기)가 등장하였는데, 이는 생산력이 증가하면서 용량이 큰 토기를 대량생산하게 되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이 시기의 토기는 고조선의 세력권을 알려주는 주요 지표유물이 되어준다.
 
=== 삼국 시대의 도자기 ===
삼국시대에는 기술이 발달하여 도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특히 신라와 가야에서는 인물형, 동물형 모양의 토기가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 신라 ====
[[File:도제기마인물상.jpg|thumbnail|[[도기 기마인물형 명기]].]]
[[File:Silla_ClaydollJar.jpg|thumbnail|[[토우장식 장경호]].]]
 
{{본문|신라의 미술}}
 
초기 신라는 가야와 함께 각종 모양의 도기를 생산하였으며, 특히 국보 91호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가 잘 알려져 있다. 이 그릇의 말탄 인물 모습은 당시의 생활상을 추측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외에도 도기에 [[토우 (고고학)|토우]]를 장식한 [[토우장식 장경호]] 또한 당시 신라인들의 사고와 생활상을 짐작하는데 도움을 준다. 신라인들은 악기를 연주하거나 성행위를 하는 모습 뿐 아니라, 코끼리나 개미핥기 같은 동물의 모습도 토우로 만들어 붙였다.<ref name="sin1">[http://book.naver.com/bookdb/text_view.nhn?bid=82626&dencrt=640swXHoJBLZAMihG%253%39lMC5cs%252F%252FR%253%39KXz7DVRkFyUo%252BVk%253D&term=%BD%C5%B6%F3+%C5%E4%BF%EC+%B0%B3%B9%CC%C7%D3%B1%E2&query=%EC%8B%A0%EB%9D%BC+%ED%86%A0%EC%9A%B0+%EA%B0%9C%EB%AF%B8%ED%95%A5%EA%B8%B0 역사스페셜 2], 효형출판, 2000, 12쪽.</ref>
 
 
==== 가야 ====
[[File:Pressapochista17.jpg|thumbnail|[[가야 오리모양 도기]].]]
 
{{본문|가야의 미술}}
 
가야는 고구려, 백제, 신라와 달리 중앙집권국가로 나아가지 못하고 연맹국가 단계에서 신라에 흡수되었다. 가야의 미술품으로는 가야 고분에서 출토된 대량의 도기들이 유명하다. 이 시기에는 도기들이 [[순장]]시에 같이 매장되는 품목이었으며, 대량으로 도기를 제작하여 매장하는 것이 권력자의 권력수준을 과시하는 역할을 했다. 가야토기는 신라토기와 마찬가지로 받침이 길고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 특징이며, 이 구멍 모양이나 배치는 각 국가나 지역마다 다른 모습을 보인다.
 
====고려====
{{본문|고려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