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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종류의 점토를 반죽·성형하여 구운 것을 통틀어 도자기라 불러왔는데, 이 가운데에는 이른바 도기·자기·토기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 외에도, 굽는 온도가 높고 유약을 사용하지 않은 불투명한 것을 석기라 부르기도 한다.
 
석기의 종류에는 성형된 것을 굽기 전에 짚으로 싸서, 짚에서 나온 재가 유약과 같은 작용을 하여 그 부분만 무늬가 생긴 것, 연료로 사용한 소나무의 재가 유약작용을 한 것, 숯불의 탄소가 재료 속의 철분과 화합한 것 등이 있다.
 
== 도자기의 종류 ==
찰흙이나 돌을 원료로 하고 그것에 의하여 형을 만들어 가마에서 고열처리하여, 화학변화를 일으키게 한 인조광물을 총칭하여 도자기라고 하는데, 이것을 성질에서 분류하면 대별하여 토기, 도기, 석기, 자기의 네 종류가 된다.
 
=== 토기(土器) ===
[[파일:Teeth of a comb pattern pottery.jpg|thumb|250px|암사동 선사유적지 빗살무늬토기]]
다공질로서 무유(無釉)의 것이고, 일반적으로 원료는 유색의 양토질(壤土質) 또는 석기질이 사용되나, 정도기(精陶器)와 아주 비슷한 소지토(素地土)의 것도 있다. 약 9000년전부터 인류는 토기를 만들어 왔으나, 현재에는 검은 기와, 붉은 벽돌, 화분의 일부 등이 만들어지고 있다. 또한 정도기질(精陶器質)의 것에는 전지용 애벌구이, 전해용 격막, 기체여과, 세균 그 밖의 여과체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토기는 부서지기 쉽고, 도자기 중에서는 가장 원시적인 것이다. 한국에서는 즐문식(빗살무늬), 채문식(彩紋式) 토기 등이 있다. 토기와 도기의 차이는 크지 않으며, 토기라는 용어는 일본에서 처음 사용된 것이기에 사용을 배제하는 사람도 있다.
 
=== 도기(陶器) ===
외관에 의하여 정도기(精陶器)와 조도기(粗陶器)로 분류되는데, 정도기는 대체로 백색이므로 그 소지(素地)는 치밀하고 경도가 높다. 그리고 애벌구이를 한 뒤에 본구이를 하는 것(半磁器 등)과 본구이 즉 맺음구이를 한 뒤에 재벌구이를 하는 것(硬質陶器, 半熔化陶器 등)의 구별이 있다. 조도기는 어느 것이나 소지가 유색으로서, 한국 것은 저화도 조도기와 고화도 조도기로 나뉜다. 성질에 따라 분류하면 점토질, 장석질, 백운석질 도기로 나뉜다. 점토질 도기에는 한국 고래의 도기가 해당되고, 장석질 도기는 경질도기(硬質陶器), 반용화도기(半熔化陶器) 등으로 나뉜다. 섭씨 1250 ~ 1350 에서 맺음구이를 하고 유약을 발라 먼저 온도보다 저온에서 재벌구이한 것이 많다. 주로 타일, 부엌 식기, 위생도기 등이 만들어진다.
 
=== 테라코타(terracotta) ===
이탈리아어로 구운 흙이란 의미이므로의미로, 이른바토기나 토기도기에 또는 와기(瓦器) 등에 상당하고,해당한다. 넓은 범위로는 모든 토소품(土燒品)을 가리켜서 말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는 소상(塑像), 조각된 병, 항아리 등이나 벽돌, 토관(土管), 와기(瓦器), 타일 등의 건축용 도기의 일부를 가리켜서 말한다.
 
=== 석기(石器) ===
{{본문|석기 (도자기)}}
굽는 온도가 높고 유약을 사용하지 않은 불투명한 것을 석기라 부르기도 한다. 석기의 종류에는 성형된 것을 굽기 전에 짚으로 싸서, 짚에서 나온 재가 유약과 같은 작용을 하여 그 부분만 무늬가 생긴 것, 연료로 사용한 소나무의 재가 유약작용을 한 것, 숯불의 탄소가 재료 속의 철분과 화합한 것 등이 있다. 사용 찰흙의 빛깔, 유약의 상태 등에 따라 조석기(粗石器)와 정석기(精石器)로 나뉜다. 토기나 도기에 비하여 소지(素地)에 흡수성이 없고, 도기와 자기 사이의 것으로서 일반적으로 소지는 유색이며, 개중에는 유약이 없는 것도 있다. 조석기는 석기 찰흙 그대로를 사용할 경우가 많고, 원료중의 불순물이 굽는 동안에 용제가 되어서 소지가 잘 구워진다. 식염유를 바른 것이나 도기에 유약을 바른 것이 있다. 정석기는 비교적 정제된 원료를 사용하고 조석기보다 고온에서 소성(燒成)된 것이 많으며 소지는 백색에 가까운 담색으로 무유(無釉)의 것이나, 식염유, 일반유(一般釉)를 칠한 것이 있다. 화학공업용의 전해탄크(電解槽), 내산타일(耐酸 tile) 등이 있고 [[스웨덴]] 등의 공예품 중에 대단히 아름다운 유약을 바른 고온도소성(燒成)의 것이 있으며, 중국의 송시대의 것에서 많이 볼 수 있다.
 
=== 자기(磁器) ===
질적으로 도자기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고 역사적으로도 가장 새로운 재질이다. 일반적으로 소지는 백색으로서 흡수성이 없고 투광성이 있어서 두드리면 금속성 소리를 낸다. 자기도 다시 세분하면 연자기(軟磁器), 경자기(硬磁器), 특수도자기의 3종으로 된다. 연자기는 섭시 1250 전후에서 투광성이 생길 때까지 맺음구이를 하고 시유(施釉)한 뒤 1000 전후에서 재벌구이를 한다. 유약의 정도가 낮은 것이 결점이지만 광택이 좋고 안료의 발생이 아름답다. 고대 중국자기, 본차이나, 프리트 자기 등이 여기에 속한다. 도자기는 소성온도가 높고, 유약의 경도도 높아 실용성에 뛰어난다. 경자기는 다시 저화도자기(섭씨 1250 -1350 소성), 중화도자기(中火陶磁器-섭씨 1350 -1400 소성), 곳화도자기(섭씨 1400 이상 소성)으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유럽 자기는 고화 도자기가 많고(영국의 본차이나 등을 제외함), 중국의 자기, 한국의 서양식 자기는 중화도자기에 속하고 삼국시대 통일신라의 도자기에 저화도자기에 속하는 것이 있다. 특수도자기는 기계적인 강도, 내산성, 전기적인 제 성질을 더욱 좋게 하기 위하여 특수한 원료를 많게 하거나 또는 한 성분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으로서 소성온도, 성질은 여러 가지이다. 고주파 절연물, 콘덴서, 고급 점화플러그 고급 도가니 등, 대부분은 자기인데, 개중에는 석기의 성질을 가진 것도 있다.
 
== 도자기의 종류 ==
소성온도 외의 색깔, 문양, 생산지에 따라 특별히 부르는 이름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있다.
 
=== 청자(靑磁) ===
극소한 철분을 함유한 유약을 고화도의 환원염으로 소성하면 푸른 기를 띠어 발색한다. 옛 중국 한시대에 이미 만들어지고 있었고, 그 후 송시대로 접어들어 대단히 아름다운 청자가 구어지고 있었다. 더욱이 한국의 고려청자는[[고려청자]]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 백자(白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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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요지(古窯趾) ===
우리나라의 제도지(製陶地)로 고려자기나 이조자기를 굽던 옛 터를 가리켜서 말한다. 경기도의 광주를 위시하여 고양, 전라도의 부안, 진안, 강진, 계롱산 등지에 있고, 광주 등지처럼 현재에도 생산되고 있는 곳도 있으나 거의가 요적(窯跡)이 있을 뿐이다.
 
=== 테라코타(terracotta) ===
이탈리아어로 구운 흙이란 의미이므로 이른바 토기 또는 와기(瓦器) 등에 상당하고, 넓은 범위로는 모든 토소품(土燒品)을 가리켜서 말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는 소상(塑像), 조각된 병, 항아리 등이나 벽돌, 토관(土管), 타일 등의 건축용 도기의 일부를 가리켜서 말한다.
 
 
== 아시아의 도자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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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도자기 ===
한국의 도자기는 비록 중국의 영향을 받았으나 종주국이었던 중국조차도 감탄할 만큼 그 품질과 아름다움이 뛰어나 동아시아 각국에서 한국의 도자기를 수입하기도 했다.
==== 선사시대의 도자기선사시대 ====
{{본문|한국의 신석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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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시대 사람들은 토기를 만들어 식량을 저장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구석기시대의 유랑생활에서 벗어나 강가에서 [[어로]]나 [[수렵]]을 하고, 나중에는 농사를 짓게 되면서 발생한 일이었다. 신석기시대에 만들어진 토기는 야외에서 말리거나 구덩이를 파고 700도 정도의 온도에서 구운 것이었다. 낮은 소성온도로 인해 내구성에 한계가 있었다. 고고학적으로 살펴보면 한국에서는 덧무늬토기, 눌러찍기무늬토기, [[빗살무늬토기]], 번개무늬토기 등이 만들어졌으며, 각각의 토기는 지표연대를 가늠하는 중요유물이 된다.
 
==== 고조선의 도자기고조선 ====
{{본문|한국의 청동기 시대}}
 
이 시기에는 표면을 갈아 윤기를 낸 토기가 등장한다. 붉은 간토기(홍도), 검은 간토기(흑도) 등이 그것이다. 이외에 점차 장식이 적어지는 민무늬 토기(덧띠 토기)가 등장하였는데, 이는 생산력이 증가하면서 용량이 큰 토기를 대량생산하게 되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이 시기의 토기는 고조선의 세력권을 알려주는 주요 지표유물이 되어준다.
 
==== 삼국 시대의 도자기시대 ====
삼국시대에는 기술이 발달하여 도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특히 신라와 가야에서는 인물형, 동물형 모양의 토기가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 신라 =====
[[File:도제기마인물상.jpg|thumbnail|[[도기 기마인물형 명기]].]]
[[File:Silla_ClaydollJar.jpg|thumbnail|[[토우장식 장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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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신라는 가야와 함께 각종 모양의 도기를 생산하였으며, 특히 국보 91호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가 잘 알려져 있다. 이 그릇의 말탄 인물 모습은 당시의 생활상을 추측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외에도 도기에 [[토우 (고고학)|토우]]를 장식한 [[토우장식 장경호]] 또한 당시 신라인들의 사고와 생활상을 짐작하는데 도움을 준다. 신라인들은 악기를 연주하거나 성행위를 하는 모습 뿐 아니라, 코끼리나 개미핥기 같은 동물의 모습도 토우로 만들어 붙였다.<ref name="sin1">[http://book.naver.com/bookdb/text_view.nhn?bid=82626&dencrt=640swXHoJBLZAMihG%253%39lMC5cs%252F%252FR%253%39KXz7DVRkFyUo%252BVk%253D&term=%BD%C5%B6%F3+%C5%E4%BF%EC+%B0%B3%B9%CC%C7%D3%B1%E2&query=%EC%8B%A0%EB%9D%BC+%ED%86%A0%EC%9A%B0+%EA%B0%9C%EB%AF%B8%ED%95%A5%EA%B8%B0 역사스페셜 2], 효형출판, 2000, 12쪽.</ref>
 
===== 가야 =====
 
==== 가야 ====
[[File:Pressapochista17.jpg|thumbnail|[[가야 오리모양 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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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File:청자_상감운학문_매병#mediaviewer/File:Goryeo_Celadon.jpg|thumbnail|[[청자 상감운학문 매병]].]]
 
{{본문|고려자기}}
 
[[고려청자]]는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미술 중 하나이다. 비취(녹색 옥)같은 색을 의미하는 비색(翡色, celadon green)을 특징으로 하는 고려청자는 [[문벌 귀족]]들이 권력을 잡았던 1050년 경부터 [[무신정권]] 말기인 1250년 경까지 제작되었다. 문벌 귀족들이 지배하던 시기의 고려청자는 [[유교]]와 송의 귀족문화의 영향을 받아 단순하면서 세련된 모양을 보여주었다. 반면 이후 무신정권기의 고려청자는 [[도교]]의 영향을 받아 화려한 형태와 문양을 띄게 된다. 후기의 청자는 청자비룡형 주자(주전자)처럼 복잡한 동물모양으로 만들어지거나,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처럼 복잡한 [[상감]] 기법을 이용해 문양을 넣었다. 원의 간섭을 받으면서 고려청자 제작 기술은 쇠퇴하고 중국에서 수입한 [[백자]]를 흉내낸 [[분청사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 조선 ====
[[File:Korean_punch'ong_ware_wine_bottle,_Choson_dynasty,_15th_century,_stoneware_with_celadon_glaze_and_white_slip,_HAA.JPG|thumbnail|음각어문편병, 호놀룰루미술관 소장]]
====일제강점기 및 현재====
[[File:Korea-Joseon-Moon_jar-01a.jpg|thumbnail|백자 달항아리.]]
 
조선 전기에는 주로 [[분청사기]]가 만들어지다가, 조선 후기로 갈 수록 [[백자]] 중심으로 바뀌었다.
 
==== 일제강점기 및 현재 ====
[[일제 강점기]] 35년을 거치면서 한국의 도자기 기술은 특유의 아름다움과 섬세함은 사라지고 급속도로 쇠락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광복절|광복]] 후에도 [[6·25 전쟁]] 등을 겪으면서 그리 달라지지 못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다시 발전하여 지금은 대부분 공업화되고 대량생산화 되었다. 그러나 옛날 방식의 도예기술을 이으려는 노력도 많은 도공들에 의해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