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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모 ===
그는 김종서의 아들 [[김승규 (조선 초기) | 김승규]]와도 덩치를 맘 먹었을 정도로 상당한 거구 였다고 한다. 여러 부의 야인들이 매우 그를 두려워하고 꺼려서 감히 침범하지 못학, 그를 '어금니가 있는 돼지'라고 불렀다고 한다. 하얗고 검은 거추장스러운 수염 때문인걸까 여진은 지휘하는 [[김종서 (1383년)| 김종서]]의 앞서 있는 장수를 더욱 두려워 하였다.
 
==== 파면과 반발 ====
1453년(단종 1년) 다시 [[함경도]] [[도절제사]]로 부임하였다. 그러나 그해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정권을 잡자 일찍이 김종서의 천거로 함길도 도절제사가 된 이징옥을 파면시키고 박호문(朴浩文)을 임명하였다. [[수양대군]]은 [[계유정란계유정난]]으로 [[김종서]] (金宗瑞1383년), [[황보| 김종서]](皇甫仁金宗瑞) 등을 죽이고 집권, 그러나 김종서의 부관인 [[이징옥]]의 존재를 인식한 수양대군 일파는 이징옥을 역모의 가능성이 있다 하여 파면하고 은밀히 그 후임으로 박호문(朴好問)을 보냈다. 반대세력을 제거하고 정치와 군국(軍國)의 대권을 한 손에 쥔 [[수양대군]]은 [[김종서]]를 도와 육진개척(六鎭開拓)에 공을 세운 이징옥이 [[김종서]]계의 인물임을 꺼려서 이징옥을 파직하고 그 후임에 [[박호문]]을 임명, 함길도에 보냈던 것이다.
 
이징옥은 일단 박호문에게 자리를 인계하고 호위병력 약간을 거느리고 상경하였다. 그러나 가던 길에 중앙에서 일어난 정변의 소식과 [[김종서]]의 암살 소식을 듣자 이에 분개한 이징옥은 회군, 박호문을 죽인 후, [[1453년]](단종 1) [[10월]] 병마를 이끌고 종성(鍾城)으로 가서 대금황제(大金皇帝)라 자칭하고 여진족의 후원을 얻어서 반란을 일으켰다. 이어 그리고 군사 지휘소를 [[오국성]](五國城)에 정하고 격문을 돌려 여진족과 변방의 각 읍에 후원을 요청하였다. 일설에는 이징옥이 [[조선 단종|단종]]을 위해 거병을 꾀하였다는 설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