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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한 성인께서 “한 왕조의 천자에 한 왕조의 신하, 한 왕조의 천인(天人)에 한 왕조의 백성, 한 왕조의 문화, 한 왕조의 복식.”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러므로 중국 고대의 복식은 단순히 왕조의 변화에 따라 변화한 것만은 아니며 조대(朝代)간의 복식특징에도 아주 큰 구별이 있다. 또한 각자 서로 다른 조대의 문화를 반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각기 다른 시기의 인류가 부여받은 지혜를 체현하고 있다.
 
=== 상(商)나라 ===
[[상나라]] 때는 방직(紡織)과 자수(刺繡) 기술이 아주 발달했는데 최초의 의복은 상의(上衣)와 하상(下裳)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당시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대부분 허리에 넓은 요대(腰帶)를 둘렀으며 옷깃(領襟), 소맷부리(袖口)에 모두 정교하고 치밀한 자수 장식을 했다.
 
=== 주(周)나라 ===
[[주나라]] 때는 [[봉건 제도]]가 확립되었고 의관제도도 점차 완비되었다. 당시에는 신분의 구별이 심했기 때문에 복식 중에서도 관복등급의 엄격한 구별이 있었다. [[제왕]]과 귀족은 모두 장소와 신분에 따라 적당한 복식을 입어야 했다. 춘추전국시기에 들어와 ‘심의(深衣)’가 나타났다. 심의는 위아래를 나누어 재단한 후 중간 부분을 이어서 만드는데 재단이 아주 독특하면서도 상의(上衣)와 하상(下裳)이 연결되어 있다. 심의는 용도는 광범위하여 남녀노소 귀천을 불문하고 모두 입을 수 있었으며 당시에 크게 유행했다.
 
=== 진한(秦漢)시대 ===
[[진나라]] 때 중국이 통일된 후 각종 제도가 새로 창립되었으며 그중에는 자연히 관복제도를 포함한다. [[한나라]]는 진나라의 제도를 이어받았는데 [[전한 무제|한무제]](漢武帝) 때 서역과 문화교류가 강화되면서 복식의 색채가 더욱 다양해졌다. 한나라 때 성행한 복식은 온몸을 감싸는 포(袍) 위주였고 양식은 소매가 큰 것이 많다. 어깨부터 직통으로 발까지 내려가는 긴 장포(長袍)는 당시 가장 전형적인 복장이었다. 한나라는 정치가 안정되고 경제가 번영함에 따라 생활도 부유해졌고 의관(衣冠)과 복제(服制)도 날로 화려해졌다. 한나라 때 귀족의 예복은 치마(裙襬), 옷깃(領口), 소매(袖口)에 모두 정교하고 아름다운 테두리를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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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진 남북조 (魏晉 南北朝)시대 ===
[[위진 남북조 시대]]에는 전란이 빈번하게 발생해 남방과 북방의 백성들이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등지고 타향을 떠도는 경우가 많았다. 동시에 다양한 민족들이 서로 섞여 거주하는 상태가 나타났고 또 호한(胡漢)문화도 서로 영향을 끼쳤다. 포의박대(褒衣博帶 크고 헐렁한 옷에 넓은 띠)는 이 시기에 유행하던 복식으로 자연스럽게 본성을 따르면서 느슨한 복장을 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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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당(隋唐)시대 ===
[[수나라|수]][[당나라|당]]시대에 나타난 화려하면서도 귀족적인 복식은 당시 정치, 경제, 문화, 예술이 공전의 번영을 누린 전성시기임을 잘 반영한다. 염색 및 실크 직조(織造) 기술이 크게 진보하고 실크로드의 개통 및 대외개방으로 [[쿠처|구자]](龜茲), [[남조 (왕국)|남조]](南詔), [[토번국|토번]](吐蕃), 아라비아 및 페르시아 사자들이 각 지역의 문화를 가져왔고 이 시기 당나라 복식이 다양한 민족의 특색을 융합해 크게 이채를 띨 수 있게 했다. 당나라의 염색기술은 아주 뛰어났으며 실크 제품의 염색문양은 전대미문의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그러므로 당나라 복식의 재료를 연구해보면 색채가 곱고 선명하며 양식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액세서리도 정교하고 아름답다. 대당(大唐)의 복식은 호탕하면서도 대범하고 화려하면서도 우아해 유구한 중국 복식의 역사 중에서도 휘황찬란한 최고봉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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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황벽화 ===
돈황(敦煌)벽화에 나오는 대량의 채색 그림들 속에는 불국세계를 묘사한 것들이 있고 부처, 천인(天人), 비천(飛天)선녀 등의 형상이 있는데 아주 장엄하고 생생하다. 만약 이들을 상세히 대조해본다면 대당의 복식과 벽화에 나오는 천인들의 복식이 아주 유사함을 발견할 수 있다. 중국 전통문화는 당나라 시기에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과 빈번한 교류를 했으며 지금 일본의 [[기모노]]나 한국의 [[한복]]은 모두 대당 복식의 특색을 보존하고 있다.
 
=== 송(宋)나라 ===
[[송나라]]의 의관복식은 당나라의 전통복제를 답습하긴 했으면서도 독특한 점이 있다. 당시 사회적으로 [[성리학]]을 숭상해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제거(存天理,去人欲)’한다는 관념을 제창하면서 전통의 보수적인 도덕관을 이끌었다. 이런 영향 때문에 복식도 더 이상 화려함을 추구하지 않게 되었고 자연스럽고 간단하며 소박한 것이 위주가 되었다.
 
송나라 남자들은 귀천을 불문하고 각종 장소에서 모두 박두(幞頭)를 썼다. 단, 이때의 박두는 비교적 모자와 비슷한 모양의 직각 관모(冠帽)였다. 복식은 둥근 깃을 위주로 다양한 색상의 포삼(袍衫)으로 등급을 구분했다. 송나라 귀족 여인의 예복은 대수삼(大袖衫 소매가 큰 적삼)이었다. 송나라는 주(周)나라의 제도를 본받아 제사 등 중요한 장소에서는 반드시 예복(禮服)을 입어야 했다. 그러나 일반 평민 여인의 복식은 상의에 유(襦), 삼(衫), 오(襖), 대수(大袖), 반비(半臂), 배자(褙子 조끼) 등을 입어 양식이 다양했고 아래에는 치마(裙子)를 입었다. 이중 배자는 당시에 신분의 귀천을 불문하고 유행했던 복식으로 외투의 일종이며 직령(直領 곧은 깃)과 대금(對襟 웃옷의 두 섭이 겹치지 않고 가운데서 단추를 채우는 맞깃), 무릎까지 길게 내려오는 것이 특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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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明)나라 ===
[[명나라]]는 건립이후 관복제도에 있어 주(周), 한(漢), 당(唐), 송(宋)의 복제를 참조해 전통적인 한족의 복식제도를 회복했다. 명나라의 복식은 재료가 다양하며 특히 자수 기술이 발달했다. 남자의 복식은 포삼(袍衫)을 위주로 했고 관리들의 조복(朝服)은 옛 제도를 답습해 오사모(烏紗帽)와 원령삼(圓領衫 둥근 깃의 삼)을 입었고 소매는 넓어 3척이나 되었다. 포삼의 색과 도안으로 관직의 품위를 구분했으며 포삼 관복의 앞에는 사각형 자수그림이 있었다. 문관(文官)은 날짐승을 도안으로 삼았고 무관(武官)은 길짐승을 도안으로 했다. 비색(緋色 붉은 색) 포삼은 1품부터 4품까지, 청색 포삼은 5품부터 7품까지, 녹색 포삼은 8품부터 9품까지 입었다. 여성복식은 주로 오(襖), 삼(衫), 배자(褙子), 비갑(比甲) 및 치마였고 당송(唐宋)의 양식을 답습했다. 포삼의 색은 진홍색이나 황색, 청색은 사용할 수 없었고 단지 연분홍색, 자색, 녹색만을 입을 수 있었다. 명나라 부녀자의 예복은 봉관하피(鳳冠霞帔)인데, 후비(后妃)가 제사나 대전(大典) 등 중요한 장소에 참가할 때 입던 옷으로 봉관(鳳冠)위에는 용과 봉황을 새겼으며 하피(霞帔 예복을 입을 때 목에 거는 띠 모양의 장식물)와 함께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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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墮胎產亡嚴寒大暑孤魂眾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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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淸) 나라===
명나라 멸방후 만주족의 습속인 변발과 의복을 받아들이기를 강요하였지만, 한족 사대부들을 중용하고 한족의 문화 유산인 학술을 종합정리하는 한편 국가 재정과 제도를 충실히 하고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문화학술사업을 장려하자, 한족들의 저항도 점차 감소하게 되었다. 이로써 중국 역대로 이민족과 한족의 부단한 융합이 결실을 맺으며 더불어 사는 세상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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