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폴도 갈티에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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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폴도 포르투나토 갈티에리 카스테이'''({{llang|es|Leopoldo Fortunato Galtieri Castelli}}, [[1926년]] [[7월 15일]] ~ [[2003년]] [[1월 12일]])는 [[아르헨티나]]의 군인 출신 정치인이다. [[1981년]] [[아르헨티나의 대통령|대통령]]이 되었으나, 그 이듬해 [[포클랜드 전쟁]]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갈티에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군사학교 졸업 후 오랫동안 군 생활을 했다. [[1976년]] [[1976년 아르헨티나 쿠데타|쿠데타]]에 참여했고, 군 장군으로 군사정권의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그는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적극 받아들여 과도한 외자 유치를 실행했지만,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또한 군사정권 시절 이루어진 실종사건 등 [[더러운 전쟁]]으로 불린 인권탄압에 관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1년]] [[12월]] 혼란 속에 대통령에 취임했으며, 국내 경제 사정 악화와 군사 정권의 국민의 반대를 외부로 돌리기 위해 [[1982년]] [[4월]], [[포클랜드 제도]]를 침공했다. 그는 포클랜드 제도를 되찾기 위해 [[포클랜드 전쟁|전쟁]]을 일으켰지만 70여일만에 큰 피해를 입고 패했고, 이 패배에 따른 책임을 지고 [[6월 18일]] 사임했다. 그 후 민간정부가 들어선 후 그는 전쟁 책임으로 인해 수감됐으나,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의 사면령으로 풀려났다. [[2002년]] 군사 정권 시절의 의문사, 실종 사건 등에 연루되어 체포됐으나, 고령인데다 [[췌장암]]을 앓고 있어 가택 연금 조치가 내려졌고, 그 이듬해 초 세상을 떠났다.
 
{{아르헨티나의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