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도리쿠스 대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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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4년]], 동고트족이 [[훈족]]들에게 점령된 지 1년째 되던 해에 튜다미르(Thiudamir) 왕의 아들로 태어났다. 테오도리쿠스는 튜다미르와 [[비잔티움 제국]] 사이의 협정의 결과로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볼모로 유년기를 보냈다.
테오도리쿠스는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지내며 [[
이 무렵 동고트족은
테오도리쿠스는 [[488년]] 군대를 끌고 [[이탈리아]]에 도착, [[489년]] [[이손조의 전투 (489년)|이손조의 전투]]와 [[밀라노의 전투 (489년)|밀라노의 전투]]와 [[489년]] [[아다의 전투 (489년)|아다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493년]] 테오도리쿠스는 [[라벤나]]를 점령하고 오도아케르는 항복하나 테오도리쿠스의 손에 살해되었다.
오도아케르와 같이 테오도리쿠스는 공식적으로는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있는 황제의 총독이었으나 실질적으로 테오도리쿠스와
테오도리쿠스 대왕은 [[프랑크족]]의 왕 [[클로비스 1세|클로비스 (Clovis) 1세]]의 여동생 [[아우도플레다]](Audofleda)를 왕비로 맞아들여 결혼동맹을 맺었으며, [[서고트족]], [[반달족]], [[부르군트족]] 왕들과도 동맹을 맺었다. 클로비스 1세는 [[506년]]과 [[523년]] 테오도리쿠스와 전쟁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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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위기간 대부분동안 테오도리쿠스 대왕은 형식적으로는 동고트족과 서고트족 모두의 왕이었으며 [[505년]]경 어린 서고트족 왕의 섭정이 되었다. 테오도리쿠스는 [[507]]년 프랑크족에게 서고트 영토인 [[아퀴타니아]]를 빼앗겼으나 그 외에는 대부분의 외침을 격퇴했고, 반달족 왕 [[트라사문트]](Thrasamund)를 격퇴해 약탈을 막았다.
테오도리쿠스는 [[아리우스주의|아리우스파]] 신자였으며, 이 점 때문에 재위 말
테오도리쿠스 대왕은 [[라벤나]]에 매장되었으며, 사후 딸 [[아말라순타]](Amalasuntha)가 손자 [[아탈라릭]](Athalaric)을 대신해 섭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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