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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의 진왕 [[이세민]]의 휘하의 장군으로 전쟁이 끝나자 좌려후 차기장군으로 임명되었다가 전초현자에게 봉해졌다. 이세민이 이건성과 이원길을 제거할 계획을 하자, 책략을 제공하였다. [[당 태종]](이세민)이 즉위하면서, 좌위장군으로 공적을 인정받아 국공에 진봉되어 봉읍 천호를 받았고, 곧 우위대장군에게 임명되었다.
 
=== 티벳티베트 원정 ===
[[630년]], 병부상서가 되어, 조정에 참가했다. 티벳의티베트의 유목민족의 나라인 복윤을 토벌하기 위해, 이정이 서해도 행군대총관이 되었고, 후군집은 그 휘하의 적석도교군총관이 되었다. [[635년]] 3월, 당군이 선주에 이르자 후군집은 「우리 대군이 도착했는데, 적은 아직 멀리 도망치지 못해고 있습니다. 정예를 보내 급히 추격하면, 그들은 우리들을 두려워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적이 험준한 산악으로 도망쳐 토벌이 어렵습니다」라고 이정에게 건의하였다. 이정은 후군집의 책략을 받아들여, 정예를 선택해 추격을 하였다. 이도종이 복윤의 군대를 고산에서 격파했다. 복윤이 강변으로 도주하자 이정은 군사를 둘로 나눠 이정과 설만균, 이대량은 북로로 추격하고, 후군집과 이도종은 남로로 추격했다. 후군집은 파나진곡을 거쳐, 한고산을 넘어 2천 여리의 성수강을 지나 어백해에 이르기까지 연전연승 했다. 북쪽으로 쌓은 돌산을 바라봐, 황하의 하원까지 나왔다. 군대를 돌려 이정과 대비강에서 합류해, 티벳의티베트의 유목민족의 나라를 평정해 개선했다.
 
[[637년]], 진주자사로 임명되어, 진국공에 봉해졌다. [[638년]], 이부상서가 되었고, 광녹대부의 자리를 겸하였다. 티벳이티베트이 송주를 포위했을 때, 후군집은 당미도 교군대총관이 되어, 티벳을티베트을 공격했다.
 
=== 가오창 원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