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고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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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 생애 초반 ===
==== 출생과 가계 ====
[[왕건]](王建)은 [[877년]] [[1월 31일]] [[송악]](松嶽)의 남쪽 자택<ref name="wangborn"/>에서 송도의 신흥 호족 [[고려 세조|왕륭]](王隆)과 그의 부인 [[위숙왕후|한씨]](韓氏)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개경|송악]]의 유력 호족이었던 아버지 [[왕륭]]은 후일 [[궁예]]가 거병하자 궁예의 휘하에 의탁하였고, [[후고구려]]의 금성태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그에게는 동생 왕신이 있었으나 왕신은 일찍 요절하였다.
 
태조는왕건는 어릴 적부터 총명함과 슬기로움이 남달랐으며 용모도 훤칠하여 장부다운 기상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태조가 17살이 되자 [[도선대사]]가 다시 [[송악]]으로 왕건을 찾아와 그에게 [[군사]]학과 천문학, 제례법 등을 가르쳤다.
 
그의 가계는 증조부 이전은 다소 불확실한데, 언제부터 그가 왕씨(王氏) 성을 사용했는가는 불확실하다. 증조모 진의([[정화왕후]]로 추존)는 [[고구려]] 유민인 [[강호경]](康虎景)과 [[강충 (신라)|강충]](康忠)의 후손으로 신천의 호족인 강씨(康氏) 가문이었다. [[고려]] 때 관찬된 [[편년통록]]에 의하면 그의 조부 [[작제건]]은 [[당나라]] [[당 숙종|숙종]]의 아들이라 한다. 이름은 왕건이다. 다만, 전설적인 면이 강하여 사실성은 의심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