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빈 성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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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6년]](정조 10년) [[6월 6일]]([[음력 5월 11일]]) [[문효세자]]가 홍역으로 죽었고, 같은 해 [[11월 4일]]([[음력 9월 14일]]) 의빈 성씨도 세 번째 출산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갑작스레 사망했다.
 
이에 정조는 그녀의 상제를 영빈 이씨 장례의 예에 따라 1등 후궁의 예로 치러 주었다. 같은 해에 죽은 아들 문효세자와 함께 효창원(현재 효창공원)에 묻혀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강제 이장되어 지금은 서삼릉의 후궁 묘역에 묻혀 있다. 남편이 황제로 추존되자 자신도 의빈에서 의비로 높여졌다.
 
정조는 문효세자와 의빈 성씨의 무덤에 각각 죽음을 애도하는 어제 신도비(御製神道碑)를 내렸는데 현재 모두 서삼릉에 옮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