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12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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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접수한 오토 1세는 요한 12세의 비리를 들어 그를 고소하고 개인 자격으로 해명할 것을 요구했다. 요한 12세를 이를 거부하고, 오히려 자신을 폐위시키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지 파문하겠다고 위협했다.<ref>Gregorovius, p. 347.</ref> 오토 1세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노드를 소집하여, 당시 캄파니아 산맥으로 사냥하고 있던<ref>Norwich, p. 80.</ref> 요한 12세를 폐위시키고 그 자리에 로마의 평신도 국가 공무원을 앉혔다. 그가 바로 훗날의 [[교황 레오 8세]]이다. 이는 교회법에 따른 절차를 완전히 무시한 처사였다.<ref>Edward Luttwak, ''The Grand Strategy of the Byzantine Empire'', (Harvard University Press, 2009), 150.</ref>
 
이에 로마 시민들이 강력하게 반발하여 소요를 일으켰지만, 오토 1세에 의해 강력하게 진압되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하지만 오토 1세가 로마를 떠난 후에 요한 12세가 자신을 따라 피신했던 이들을 거느리고 위풍당당하게로마를 로마에되찾기 입성하였다위해 길을 떠났다. 이에이 소식을 접한 레오 8세는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오토 1세가 있는 곳으로 도망갔다.<ref>Gregorovius, pp. 349-350.</ref>
 
그는 많은 적들을 처벌하고 레오 8세의 결정들을 모두 무효로 선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