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레오 8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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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베네딕토 5세는 교황 예복을 입은 채 자신의 지지자들과 함께 레오 8세 앞으로 불려나왔다. 레오 8세는 베네딕토 5세에게 자신이 엄연히 아직 살아있는데 어째서 베드로좌에 앉으려 했는지에 대해서 추궁하였다. 그러자 베네딕토 5세는 “만약 제가 죄를 지었다면, 부디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선처를 부탁했다.<ref>Gregorovius, pg. 354</ref> 오토 1세로부터 복종을 맹세하면 목숨은 보존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베네딕토 5세는 레오 8세의 발 앞에 엎드려서 자신의 죄를 인정했다.<ref>Mann, pgs. 275-6</ref> 레오 8세에 의해 소집된 시노드에서는 베네딕토 5세의 주교품을 무효화하고, 그의 어깨에 걸친 [[팔리움]]을 강제로 벗겨냈다. 그리고 그의 [[주교 지팡이]]는 레오 8세에 의해 파괴되었다. 하지만 오토 1세의 중재 덕분에 베네딕토 5세는 부제품만은 유지하는 것을 허락받았다.<ref>Mann, pg. 276</ref> 시노드 이후 로마의 귀족들은 더불어 [[베드로|성 베드로]]의 무덤 앞에 서서 앞으로는 레오 8세에게 순명하겠다고 맹세했으며, 오토 1세는 964년 6월 말에 로마를 떠났다.<ref>Richard P. McBrien, ''Lives of the Popes: The Pontiffs from St. Peter to Benedict XVI'', (HarperCollins, 2000), 159.</ref>
 
오토 1세의 비호 아래 레오 8세는 교황직을 수행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레오 8세는 교황으로서 잘못된 정책들을 내놓은 것이 많았는데, 그 가운데 대부분은 오토 1세와 그의 후계자들에게 각종 특권을 세부적으로 부여하는 것을 허용하는 정책들이었다. 그 중 일부를 살펴보자면, 독일 황제들에게 후임 교황과 [[이탈리아 왕국]]의 차기 국왕의 즉위를 허용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과 모든 교황과 대주교, 주교는 주교좌 착좌 전에 황제로부터 먼저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레오 8세는 허물이 없는 평신도이자 국가 공무원이었다. 그는 [[교황 요한 12세]]의 사건으로 [[신성로마제국]] 황제 [[오토 1세]]에 의해 로마 지방 [[공의회]]에서 교황으로 선출되어 하루 만에 모든 품을 받고 교황좌에 올랐다. 그는 오토 1세가 개정하여 이탈리아에 도입된 새 전례에 의하여 취임한 첫 번째 교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