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의 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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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티무르의 조지아 침략}}''
 
1220년대에, 남캅카스와 [[소아시아]]는 [[몽골]]의 침략과 대면했다. 저지아-아르메니아 군사력과 그들의 동맹에 의한 격렬한 저항에도 물구하고, 조지아(그루지야)와조지아와 아르메니아, 중앙 아나톨리아 영토들의 대부분을 포함하는 모든 지역은 마침내 몽골에 의해 함락되었다.
[[파일:KingLuarsab.jpg|thumb|200px|left|동조지아(동그루지야)의 왕 루스랍 2세(나중에 참수됨)]]
1243년에, [[조지아의 루수단|조지아(그루지야)의 루수단]] 여왕은 조지아(그루지야)가조지아가 그녀의 의존국을 상실하여 몽골에 수여되는 몽골과의 평화 협정을 체결했고, 동부 쉬르반, [[나키체반]]과 몇몇 다른 영토들을 마지못해 양도했으며, 몽골에 대한 공물의 진상뿐만 아니라 남아있던 영토의 이상에 그들의 점유와 법적으로는 아니지만 사실상 데-펙토인 통치에도 동의했다. 몽골에 의해 점유된 트빌리시는 왕국의 공식적인 수도로 잔존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왕은 그곳으로 돌아가기를 거절했고 1245년에 그녀가 죽기까지 [[쿠타이시]]에 머물렀다. 모든 고난 이상에다 더하여, 몽골로부터 자유롭게 남아있던 왕국의 부분까지도 해체되기 시작했다. 왕권은 그들이 인정한 몽골과의 관계를 확립하고 조지아(그루지야)에서조지아에서 1266년에 실질적으로 양도한 [[삼트스케]]{조지아(그루지야)의조지아의 남부 속주들}의 여러 군사령관들에 대한 통제력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1259~1330년 사이의 기간은 조지아(그루지야)가조지아가 완전한 독립을 위해 몽골의 [[일카나테]]에 대항한 투쟁으로 상진된다. 첫 번째 반-몽골 봉기는 1259년에 [[조지아의 다비트 6세|다비트 나린]]의 지휘 하에 시작되었다. 사실상 그의 전쟁은 거의 3년의 기간동안을 뒤흔들었다. 반-몽골 분투는 다비트 데메테르 2세 왕(1270~1289)과 다비트 8세 왕(1294~1311)의 휘하에서도 계속되었고, 마침내, 일카나테의 몰락에 한 몫 단단히 한 [[조지아의 게오르게 5세|찬란한 게오르게 왕]]이 몽골에 공물을 진상하는 것을 중지시켰고, 1220년의 왕국 당시 조지아(그루지야)의조지아의 옛 국경들을 복원했고, [[트레비존드의 제국]]을 조지아(그루지야)의조지아의 영향권 안으로 되돌렸다.
 
1386~1403년에 조지아(그루지야) 왕국은 [[타메를란]]이 지휘하는 여덟번의 투르크족과 몽골족의 침략을 맞닥드렸다. [[압하지야]]와 [[스바네티|스바네티야]]는 제외하고, 침략은 조지아(그루지야)의조지아의 경제, 인구와 도심을 황폐화 시켰다.
 
== 오스만과 페르시아의 지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