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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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된 약탈물은 식량이었으며 지방에서 조세를 거두어 [[한성]]으로 올라가는 공선 등이 피해를 가장 많이 입었다. 그 규모는 100척에서 500척까지 이르는 선단을 이루어 연안 마을을 습격하는 형태였으니 때로는 내륙 깊숙이 들어오기도 하였다. 1223년부터 1392년까지 169년간 총 529회의 침입이 있었고, [[조선왕조실록]]에도 왜구침구 기사가 312건이 나온다. 이 때문에 한국에선 현재까지도 왜구라는 명칭은 일본인을 폄하하는 명칭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한국사에서의 왜구의 활동왜구활동==
=== 삼국 시대의 왜구 ===
[[가야]]와 연합한 왜가 신라을 공격하여 금성을 함락시킨 일이 있다. [[광개토왕]] 재위시, 왜구는 가야를 대동해서 금성을 함락하고 다수의 [[신라]]인을 잡아갔다. 이에 신라 조정은 고구려에 군사 지원을 요청하였다. 고구려 군대는 가야의 종발성(현재의 김해 지역)을 함락하고 왜구를 몰아냈다. 고구려 조정은 김해와 그 주변에 신라 왕족을 관리자로 파견하여 영토 안정을 꾀하였다. 또한 신라 수도 지역에 군대를 주둔시켜 왜적에 방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