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토미 히데요리: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Choboty (토론 | 기여)
잔글 일본어판 분류 정보를 이용.+분류:셋쓰 국 사람
태그: m 모바일 웹
62번째 줄:
도요토미 측 장수인 [[오노 하루후사]](大野治房)가 야마토 코리야마 성(大和郡山城)으로 출격하여 제압, 약탈을 벌이고 되돌아온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도요토미 측은 한난(阪南, 오사카 남서부)으로부터 오사카 쪽으로 북상하고 있던 도쿠가와의 대군을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군대로 맞서 싸울 수 있도록 좁은 지역인 야오(八尾)로 진군하였다. 결국 야오와 와카에(若江), 도묘지(道明寺)에서의 전투에서 [[초소카베 모리치카]] 휘하의 도요토미군은 [[도도 다카토라]](藤堂高虎) 휘하의 도쿠가와군을 괴멸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주요 장수인 [[기무라 시게나리]](木村重成), [[고토 모토쓰구]] 등이 이 전투에서 전사하면서 도요토미군 또한 타격을 입었다. 또한 [[오노 하루후사]] 등이 출정한 [[기슈]](紀州)에서의 가시이 전투(樫井の戦い)에서 선봉인 [[반 나오유키]](塙直之)의 도요토미군이 [[아사노 나가아키라]](浅野長晟)의 도쿠가와군에게 패퇴하고 나오유키 또한 전사하면서 도요토미군은 후퇴하여 오사카 성으로 물러났다.
 
[[파일:Sanada Yukimura.jpg|200px|thumb|right|[[사나다 노부시게]]]]
잇따른 패전으로 전력을 잃고 피폐해진 도요토미 측은 도쿠가와의 수장인 이에야스, 히데타다가 오사카에 포진한 때를 노려 최종 결전을 다짐하였다. 이 때 [[사나다 노부시게]]가 도요토미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총대장인 히데요리가 직접 전선에 나와 군사들을 독려할 것을 히데요리에게 촉구하였으나, 전장이 아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을 염려한 요도도노의 완강한 반대로 실현되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 요도도노 본인은 자주 전선을 방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