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헌왕후: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22번째 줄:
 
=== 정원군과의 결혼 ===
처음에 정원군과 혼인하여 연주군부인(連珠郡夫人)에 봉해졌다가 [[1623년]] [[인조반정]]으로 아들인 능양군(綾陽君)이 보위에 오르자 봉작(封爵)을 연주부부인(連珠府夫人)이라 했는데, 별도로 계운궁(啓運宮)이라는 궁호를 받았다. 이후 [[경희궁]]터에 거주하다가 [[1626년]](인조 4년) [[2월 10일 (음력 1월 14일)]]에 경희궁 회상전(會祥殿)에서 죽었다. 당시 향년 48세였다. 그가 죽을 때 [[조선 인조|인조]]는 자신이 상주가 되려고 하다가 예학자들의 반발로 무산되었고 인조의 동생 [[능원대군|능원군]]이 상주가 되었다.<ref>《조선왕조실록》 인조 11권, 4년(1626 병인 / 명 천계(天啓) 6년) 1월 15일(기미) 9번째기사</ref>
 
=== 사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