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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수'''(姜萬洙, 1945년 6월 30일 ~ )는 [[대한민국]]의 경제 관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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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합천]] 출생으로 [[1965년]] 경남고를 수석 졸업하고, [[1969년]]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1970년]] [[행정고시]](8회) 재정직에 수석 합격한 뒤 [[국세청]]에서 공직을 시작하였다. [[1985년]]에서 [[1988년]] 주미국 한국대사관 재무관(뉴욕 주재)을 역임하였다.
[[1986년]] 뉴욕 주재 재무관 재임 시 [[부가가치세]] 도입을 위해 함께 일한 IMF의 테이트 재정국 부국장이 써준 추천서의 도움으로 전공인 법학 대신 경제학 선택으로 뉴욕대 대학원에 입학했다.<ref>《현장에서 본한국경제 30년》, 제3부 국제금융, 삼성경제연구소, 강만수, p 323.</ref> 뉴욕대학교 대학원은 저녁 6시부터 강의가 시작되어 월스트리트 금융기관의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이었다.<ref name=graduated>《현장에서 본한국경제 30년》, 제3부 국제금융, 삼성경제연구소, 강만수, p 316.</ref> [[1987년]] [[뉴욕대]](NYU) 대학원에서 계절학기를 포함하여 다섯학기 만에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ref name=graduated />
[[1995년]]~[[1996년]] 제14대 관세청장, [[1996년]]~[[1997년]] 통상산업부 차관을 역임하였다.
관료출신으로 민간에서 활동하다가 [[2004년]] [[한나라당]]의 [[대한민국 제17대 국회의원 목록|제 17대 국회의원]] 공천심사위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1999년 시조문학지 겨울호를 통해 '그리움'이란 시조로 문단에 등단하기도 했다. 합천문학회의 회원이기도 하다.▼
[[1997년]]~[[1998년]] 제4대 재정경제원 차관으로 일하였다. [[1999년]]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을 역임하였으며, [[2000년]] [[디지털경제연구소]] 이사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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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서적 인용|제목 =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 부가세에서 IMF사태까지| 저자 = 강만수| 확인일자 = 2008-07-13| 출판사 = [[삼성경제연구소]]}}</ref><ref>{{웹 인용|url = http://people.naver.com/DetailView.nhn?frompage=nx_people&id=34872|제목=네이버 인물정보|확인일자=2008-10-04|작품명=강만수}}</ref><ref name="hani">{{웹 인용| url = http://www.hani.co.kr/section-021011000/2008/02/021011000200802280699054.html|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052945| 제목 = 돌아온 강만수, 무엇을 할 것인가| 저자 = 김영배 기자| 작품명 = 한겨레21}}</ref>
[[2008년]] [[2월 29일]]~[[2009년]] [[2월 9일]]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가 통합된 [[기획재정부]]의 초대 장관으로 이명박 정부의 첫 경제 수장을 맡았다.
[[2009년]] [[1월 19일]] 기획재정부 장관을 퇴임한 뒤, 대통령 경제특별보좌관 겸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ref>{{웹 인용|url=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090122181109016&p=khan|제목 ='만수 무강' 강만수, 국가경쟁력委 위원장에 내정|출판사=경향신문|작성일자=2009-1-22}}</ref> [[2009년]] [[미국]] 뉴욕대(NYU) 한국동문회(회장 [[장대환]])에서 주는 2009 올해의 자랑스러운 NYU 동문상'을 수상했다.(2009년 신설)<ref>{{웹 인용|url=http://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2/16/2009121602193.html|제목 =강만수 대통령 경제특보 '자랑스러운 NYU 동문상'|출판사=조선일보|작성일자=2009-12-16}}</ref>
이때 강만수 위원장은 2009년 뉴욕대학교(NYU) 한국동문회(회장 장대환)로부터 "글로벌 경제위기에 맞서 선제적이며 과감한 대응책 추진을 통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경제회복세를 기록하는데 공헌했다"는 이유로 '2009 올해의 자랑스러운 NYU 동문상'을 받았다. <ref>{{웹 인용|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1&aid=0003028762|출판사=연합뉴스|저자=주종국|작성일자=2009-12-16 |확인일자=2010-01-22}} </ref><ref>{{웹 인용|url=http://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2/16/2009121602193.html|제목 =강만수 대통령 경제특보 '자랑스러운 NYU 동문상'|출판사=조선일보|작성일자=2009-12-16}}</ref> ▼
=== 부가가치세 실무자 ===
▲대통령 특별보좌관 직에서 물러난 [[2011년]] [[3월]]에는 [[산은금융그룹]](산은금융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 행장에 취임하였다.
=== 기타 주요이력 ===
* 재무부: 금융ㆍ부동산 실명제 도입, 금융시장 자율화와 개방 등을 담당.
* 관세청:청장 재직
* 통상산업부: 차관 재직
[[2008년]] 2월 29일~[[2009년]] 2월 9일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가 통합된 [[기획재정부]]의 초대 장관으로 [[이명박 정부]]의 첫 경제 수장을 맡았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 모토인 '대한민국 747'(연간 7% 성장, 10년 내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 달성)비전 기획을 주도 하였으며 당선 직후 출범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는 경제 1분과 간사를 맡아 새 정부의 경제 정책도 짰다. 2009년 2월 개각으로 기획재정부 장관에서 물러난 뒤 [[2009년]] 2월 12일 대통령 직속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장(장관급)에 취임했다. <ref>{{뉴스 인용|제목=李대통령, 개각 단행..4명 교체(종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etc&oid=001&aid=0002461140|출판사=연합뉴스|저자=황정욱|작성일자=2009-01-19|확인일자=2009-01-19}}</ref>
[[이명박]]과는 [[1981년]] [[소망교회]]에서 처음 만났다. 장로인 이명박은 소망교회 창립 때부터 활동하였는데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2000년 강만수가 한나라당 미래경쟁력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이다. 당시 위원장은 이명박이었다. 이명박 서울시장 재직 시절인 2005년 8월 강만수는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원장에 기용되었다. <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9/22/2007092200447.html <nowiki>[이명박의 사람들]</nowiki> 이후보 공약 최종 ‘교통정리'] 조선일보, 2007.09.22</ref> [[2008년]] 강만수가 모친상을 당하였을 때, 이명박이 대통령 신분임에도 조문을 와 두 사람의 깊은 관계를 엿볼 수 있다.<ref>{{뉴스 인용|제목=李대통령 강만수 장관 모친상 조문(상보) |url=http://media.daum.net/economic/others/view.html?cateid=1041&newsid=20080627004703195&p=moneytoday|출판사=머니투데이|작성일자=2008-06-27}}</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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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통한 환율 정책을 주장한다.<ref>"'환율이라는 것은 경제적 주권을 방어하는 수단이고, 일종의 전쟁이구나', '환율은 시장에 맡기고 하는 그런 사항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2008년 2월 29일 장관 취임 직후 기자간담회)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20081006160420] 프레시안, 2008.10.6</ref> 당시 고환율 정책을 추진해 수입물가를 상승시켜 서민경제에 타격을 주었다는 비판을 받아<ref>{{뉴스 인용 |제목 = '강만수 고환율'로 한국물가 OECD 최고치 급등 |url =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38588 |출판사 = 뷰스앤뉴스 |저자 = 박태견 기자 |쪽 = |작성일자 = 2008-08-04 |확인일자 = 2009-11-11}}</ref> [[이명박]]대통령과 함께 [[리만브라더스]]라고 불리기도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지금 이념 싸움이나 벌일 때인가 |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262&aid=0000002160& |출판사 = 신동아 |저자 = 전진우 |쪽 = |작성일자 = 2009-09-23 |확인일자 = 2009-11-13}}</ref>
* 취임 후 첫 공식 브리핑에서 "우리나라에서는 근로소득세를 내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소득세 면세점을 상향 조정하기보다는 세율을 낮추는 쪽으로 근로소득세 부담을 조정할 것"이라고 인하 방침을 밝혔다.<ref name="whorya1"/>
▲; 상속세
* 취임 후 첫 공식브리핑에서 "상속세는 폐지하느냐 마느냐 보다 세율 등을 어떻게 (조정)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며 상속세율 인하를 검토 중임을 시사했다. 앞서 공식브리핑 자리에서 "앞으로 상속세를 두는 나라는 자본도피를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국제통화기금]]측의 권고를 소개한 바 있다. <ref name="whorya1">[http://www.moneytoday.co.kr/view/mtview.php?type=1&no=2008041518150532616&outlink=1 강만수 장관 "소득세·상속세 낮춘다"] 머니투데이, 2008.06.24</ref>
* 취임 후 첫 공식브리핑에서 기업의 투자 증대를 위해 법인세 인하 방침을 밝힌데 이어 전국 세무관서장 회의에서 주변경쟁국에 비해 높은 수준의 법인세를 지속적으로 낮추겠다고 발언했다.<ref>[https://archive.is/20120707052348/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148905 강만수 재정부 장관 "감세 조기 추진 … 법인세 20%로"] 중앙일보, 2008.05.17</ref> [[2008년]] [[6월 4일]]에는 [[기획재정부]]는 법인세율을 인하하고 과세표준 기준금액을 상향 조정하는 법인세법 일부계정법률안<ref>[http://korea.kr/newsWeb/appmanager/portal/news2?_nfpb=true&portlet_sectionnews_20_actionOverride=%2Fpages%2Fbrief%2FsectionNews2%2Fview&_windowLabel=portlet_sectionnews_20&_pageLabel=filebox2_page_01&_nfls=false&portlet_sectionnews_20newsDataId=148653220&portlet_sectionnews_20category_id=laws_news&portlet_sectionnews_20section_id=laws_sec_1 법인세법 일부개정법률(안) 입법예고] 정책포털, 2008.06.04</ref>과 중소기업을 위한 최저한세율 조정하는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ref>[http://korea.kr/newsWeb/appmanager/portal/news2?_nfpb=true&portlet_sectionnews_20_actionOverride=%2Fpages%2Fbrief%2FsectionNews2%2Fview&_windowLabel=portlet_sectionnews_20&_pageLabel=filebox2_page_01&_nfls=false&portlet_sectionnews_20newsDataId=148653221&portlet_sectionnews_20category_id=laws_news&portlet_sectionnews_20section_id=laws_sec_1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 입법예고] 정책포털, 2008.06.04</ref>을 입법 예고했다.
* 법인세 인하 방침에 대해 투자 활성화를 유도하는 효과가 있지만 재정건전성이 악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ref>[http://www.moneytoday.co.kr/view/mtview.php?type=1&no=2008052513593887537&outlink=1 "법인세율 인하,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 머니투데이, 08.05.25</ref> 또한 재벌, 고소득층만 해택이 돌아간다는 비판에 대해 "대기업이 세금을 많이 내기 때문에 세금 경감시 혜택을 많이 보는 것은 당연하다"고 반박했다.<ref>[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8041556491 강만수 재정 "감세·재정투입 `쌍끌이`…경기 살리겠다"] 한국경제, 2008.04.15</ref>
==== 종합부동산세 ====
* 강만수는 종합부동산세는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과도한 세금, 이란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재직시 종부세 완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 재무부에서 금융ㆍ부동산 실명제 도입, 금융시장 자율화와 개방 등을 담당했으며 재무부 세제국 사무관으로 근무하던 [[1977년]] 부가가치세를 신설하는 실무자였다. <ref>{{서적 인용|제목 =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 부가세에서 IMF사태까지| 저자 = 강만수| 확인일자 = 2008-07-13| 출판사 = [[삼성경제연구소]]| 쪽 = 61| 발행년도 = 2005| id = ISBN 89-7633-257-1| 인용문 = 당시 부가가치세로 대체되는 영업세를 직접세로 분류하여 직접세과에서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직접세과 영업세담당 사무관으로 가서 태스크포스의 주무를 맡게 되었다. 태스크포스는 최진배 세제국장이 주관하고}}</ref>
▲** 차관으로 재직시 IMF사태가 발발하여, 지원자금 협상과 금융감독ㆍ중앙은행제도 개편 등 참여.
▲** [[청계천]] 복원, 대중교통체계개편 등 주요 프로젝트의 연구에 참여.
==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관계 ==
▲[[이명박]]과는 [[1981년]] [[소망교회]]에서 처음 만났다. 장로인 이명박은 소망교회 창립 때부터 활동하였는데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2000년 강만수가 한나라당 미래경쟁력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이다. 당시 위원장은 이명박이었다. 이명박 서울시장 재직 시절인 2005년 8월 강만수는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원장에 기용되었다. <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9/22/2007092200447.html <nowiki>[이명박의 사람들]</nowiki> 이후보 공약 최종 ‘교통정리'] 조선일보, 2007.09.22</ref> [[2008년]] 강만수가 모친상을 당하였을 때, 이명박이 대통령 신분임에도 조문을 와 두 사람의 깊은 관계를 엿볼 수 있다.<ref>{{뉴스 인용|제목=李대통령 강만수 장관 모친상 조문(상보) |url=http://media.daum.net/economic/others/view.html?cateid=1041&newsid=20080627004703195&p=moneytoday|출판사=머니투데이|작성일자=2008-06-27}}</ref>
▲** 상근부회장직을 맡아 김재철 회장(현 [[동원그룹]] 회장)과 함께 활동.
== 저서 ==
* 《한국을 위한 새로운 자금원으로서의 양키본드》(Yankee Bonds as a New Financing Source for Korea) - 석사논문
*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삼성경제연구소, 2005년, ISBN 89-7633-257-1
==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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